나에게는 너무나 짧게 느껴지는 연휴, 연휴 끝자락은 일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리더십이란 무엇일까 하고요. 리더십 책과 논문을 읽다보면 리더는 '영향을 미치는 자'라고 합니다. 좋은 리더는 좋은 영향을 미치고, 나쁜 리더는 나쁜 영향을 미치겠죠. 이런 의미에서 누구나 리더라면, 나는 어떤 리더일까, 또 어떤 리더로 남겨질까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요즘 시대에는 (헛) 수고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 호구가 되는 걸 누구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세우는 데에는 많은 수고가 필요하지만, 또 누군가 밟고 올라가고 끝없는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이런 수고는 헛된 수고로 여겨질 뿐입니다. 나 살기도 바쁜 세상에서, 또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 없는 세상에서, 이 수고는 참으로 헛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보게 되면, 창조의 원리에 따라 우리는 관계를 맺고 연합하여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 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 중에 하나는 '사랑의 수고'가 있습니다. 제가 기업에 있으면서, 또 조직과 기업을 컨설팅하면서, 세상의 원리와 성경의 원리는 다른 세상의 것이다 라는 전제가 강하게 있었습니다. 실제로 돌아가는 매커니즘이 다르고 믿는 것이 다르니까요.
그런데 이 일을 계속할 수록, 공동체를 섬기는 일을 할수록 나의 가치관은 두 가지를 섬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세상의 원리가 어떠해도 나의 믿음에 따라 살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게 됩니다.
이에 대해 나의 또 다른 자아는 그것 참 멍청한 결정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저는 나 살기도 바쁜 세상이며, 또 알아주는 것이 없다는 것에 분노하기도 하고, 배신을 당할 수 있다는 경험이 아프게 새겨져 있어 그렇게 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수고가 없는 조직은 지속가능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일에 깔려 죽을 만큼 일에 치여사는 (지금의) 수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이 신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런 지경에 이르렀다면 스스로를 말씀 앞에서 돌아보고, 어떠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구지 그렇지 않아도 그럭저럭 '잘 굴러간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잠깐의 유행과 요행으로 굴러가더라도 창조의 원리에 따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조직은 저절로 되어 지지 않습니다. 저절로 되어간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마 사랑에 빚진 사람들, 이 수고 위에 세워진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수고는 누가 어떻게 시작할까요. 리더가 먼저 시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먼저 시작하는 자가 리더입니다. 내가 그 수고를 기꺼이 시작해보리라 마음을 먹고 사랑의 실천을 하며 살아갈 때 조금씩 살아나는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때 최고 리더는 이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지원해주고 지지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조직의 문화와 제도도 그 변화에 함께 맞춰 움직여 가야 합니다. 서로 제도 먼저, 문화 먼저, 사람 먼저, 핑퐁 조직은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성숙의 단계에 가기 어렵습니다. 이는 서로 어울어져 영향을 주고 받으므로 우선순위에 따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짧은 일기글은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나는 어떤 리더로 남겨지고 싶은가에 대해 생각하며 적어내린 성찰 한 조각입니다. 너무 이상적인 것은 아닌가, 정말 그렇게 살아낼 수 있는가 할 때, 제 힘과 의지로는 그렇게 못한다고 말합니다. 다만 이렇게 뜻을 정하고, 매번 넘어질 때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한걸음 나아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음을 압니다.
청명한 하늘이 있는 가을, 아름다운 감사의 계절에
감사가 넘쳐나는, 감사의 나눔이 풍성한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