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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in Pangyo May 29. 2019

워킹맘, 완벽주의 버리기

#완벽주의를 버리는 3가지 단계


남편에게 퇴사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워킹맘을 시작하고 아이가 5살이 될 때까지 하루에 보통 4시간 정도 잤고, 6시간을 넘겨 잠을 자본 적이 없습니다. 새벽 6시 25분 통근 버스 탑승, 아침 7시 15분 회사 도착, 저녁 8시-11시 퇴근, 밤 10시-12시 집 도착, 집안일과 밀린 업무 처리 후 2시경 취침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활패턴이었습니다. 토요일에도 남편은 자주 출근을 했고, 주일에는 봉사와 예배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교회에 있었습니다. 365일 내내 잠시도 쉴 틈 없이 100m 전력 질주를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회사 일은 회사일대로 쌓이고 성과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밤 11시가 넘도록 졸린 잠을 참고 엄마를 기다렸습니다. 어머니는 하루하루 피곤해 보이셨고, 힘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아프신 날에는 시누이가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다녀오곤 했습니다. 남편과는 대화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제 욕심 때문에 모두가 힘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만 회사를 그만 두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았습니다. 남편에게 퇴사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남편은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저의 커리어를 응원해주었고, 또 갚아야 할 빚도 많기 때문에 제가 일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많이 아쉬워할 줄 알았습니다. 한 편으로는 남편이 이러한 저를 붙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퇴사를 하고 싶다는 저의 말을 들은 남편의 처음은 꽤나 기뻐하며 퇴사를 환영했습니다. 이러한 반응을 의아하게 느끼며 이유를 묻는 저에게 남편은 대답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너무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제가 일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을 하거나 그만두는 것은 저의 선택이지, 남편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저를 사랑하니까 응원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동시에 일을 그만두면 금전적으로 조금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우리 가정이 조금 더 안정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저의 퇴사 선택을 지지해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늘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남편인데, 아내가 일을 그만두길 바라는 마음은 다른 남자들과 다를 것이 없네라는 배신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가 5살이 되던 해까지 그 마음을 숨기고 나를 한결같이 응원해주고 배려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공존했습니다.     






심리치유 전문기업 마인드 프리즘이 워킹맘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재미있는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워킹맘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책임감'과 '성취욕구'가 남성 직장인과 전업주부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를 나타냈습니다. 



높은 책임감과 성취욕을 지닌 워킹맘들은 일도 육아도 다 잘 해내고 싶어 합니다. 직장에선 인정받기 위해 역할을 다하고, 가정에서도 집안일을 모두 떠맡습니다. 그러다 결국 가족과 동료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육아 때문에 직장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혹은 '회사 일 때문에 아이를 잘 못 챙기고 있는 것 같다' 등의 감정입니다.
(모바일 한경, 일하는 엄마는 '민폐맘? 워킹맘의 진심은?, 2014.05.29.)   



심리학 석사 과정 중, 버럭하며 쓴소리를 하시기로 유명한 상담계의 명성이 높은 교수님의 집단 상담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이 곳에서 저는 저의 마음을 솔직하게 나누었습니다. 안간힘을 다하여 잠을 줄이며,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최선을 다하는데도, 회사나 아이, 남편, 시댁에게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낀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자 교수님이 저에게 되물으셨습니다.


'뭐가 그렇게 잘나서 댁 혼자 다하려 그래요? 댁이 그렇게 잘났수?'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습니다. 열심히 아등바등 노력하는 내담자에게 꼭 저렇게 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곧 교수님의 의도를 알아차렸습니다. 일과 가사, 육아 모두 저의 힘으로 하고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나만이 완벽하게 할 수 있어' '다른 사람은 할 수 없어'라는 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비합리적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완벽주의 버리기 3단계]

높은 책임감과 성취 욕구를 지닌 워킹맘들은 완벽주의를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은 100m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긴 마라톤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1. 모든 것은 Trade-off 임을 인지하기

완벽주의를 버리는 첫 번째 단계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음을 알아차리는 단계입니다. 야근을 하면 아이와 저녁을 포기해야 합니다. 성취 욕구를 많이 느낄 수 있는 사업부에 근무하면, 그만큼 가족에게 쏟을 에너지는 적어집니다. 시부모님이나 친정 부모님이 아이를 봐 주실 경우에는, 나의 육아스타일로 양육하는 것은 포기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머니께 아이에게 잠들기 전 2권의 책을 읽어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는 눈도 침침하시고, 이미 아이를 돌보느라 체력을 다 소진한 상태입니다. 책을 읽어주고 싶으면 보호자인 엄마나 아빠가 잠들 기전 집에 들어와 읽어줘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만큼 일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만큼 아이도 양육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Trade-off 되는 영역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2. 나의 영역과 남의 영역을 구분하기

모든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수 없음을 인지했다면, 다음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과 남이 할 수 있는 영역을 구분해야 합니다.


당신의 뒤뜰이 누군가의 앞뜰이 되게 하라
-피터 드러커-


잭 웰치가 인터뷰에서 인용하여 더욱 유명해진 이 말의 의미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하려고 하지 말고, 본인의 전문 영역이 아닌 것은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 맡기라는 뜻입니다. 

반찬 가게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 걷지 못하는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는 것에 대해서, 가사 도우미 선생님을 쓰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요리에, 보육에, 청소에 전문가 분들에게 아웃소싱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회사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역할이 애매한 일을 꼭 본인의 업무로 가지고 올 필요는 없습니다. 후배도 있고, 선배도 있고, 팀장도 있고, 유관부서도 있습니다. 이 모든 회사 업무를 자기가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은 하지 못한다는 자만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3. 적응적인 완벽주의로 나아가기 : 완벽에 가까워지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높은 책임감과 성취 욕구는 어느 정도 조절은 가능하겠지만, 그 기질 자체가 바뀌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에너지의 방향성을 잘 설정해야 합니다. 애초에 ’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완벽에 가까워지도록 최선을 다하는 적응적인 완벽주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지나치게 나의 기준 속 완벽을 추구하며 사소한 부분에 시간과 에너지를 과도하게 할애하고 있다면 그것은 부적응적인 완벽주의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되어있습니다. 결과보다는 과정과 방향에 집중해야 합니다. 잦은 야근으로 평일에 아이와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면, 주말에 잠시 노트북과 핸드폰은 치워두고 아이와 온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엄마의 따뜻한 요리로 저녁 식사를 차려주지는 못하지만, 맛있는 요리를 사서 즐거운 저녁 시간은 보낼 수는 있습니다.     







저의 퇴사 문제를 놓고 남편과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저는 퇴사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과 육아, 가사 이 모든 것이 저의 책임인 것만 같고,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상황에서 저만 일을 그만 두면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올 것만 같았습니다. 이러한 죄책감이 ' 퇴사'라는 선택지에 다다르게 한 것입니다. 남편은 이러한 저의 마음에 공감과 따뜻한 위로를 해주고,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변화하려면 남편의 도움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사와 육아에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로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정한 팀 플레이가 시작된 것입니다.     


직장인 누구나 마음에 퇴직서 한 장씩은 가지고 다닌다고 합니다. 특히 우리 워킹맘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까지 일하고 있나?'라는 마음이 들고는 합니다.


오늘, 이 자리까지도 정말 많이 인내하고,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은 100% 기준에서 80%만 해보시는 하루를 보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 이미지 출처 : lg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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