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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in Pangyo Jul 11. 2019

워킹맘, 아이가 인지발달 이상이 된 사연

#아빠의 육아 부재가 일으킨 참사


둘째 영유아 검진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아이가 6개월쯤 받는 1차 영유아 검진은 엄마들이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우리 아이가 얼마나 잘 크고 있는지 자랑처럼 올려놓는 인증 사진이기도 합니다. 엄마도 처음 엄마가 되고 그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고생하고 노력한 것에 대한 증명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가 잘 크고 있다고 아이의 키와 몸무게, 발달 사항이 숫자로 나오니, 엄마들은 내가 잘하고 있었던 걸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위로를 받고 안도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육아휴직 중에도 회사 업무를 보는 것처럼 해야 할 일들을 다이어리에 일일이 적어놓고 지워가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1차 영유아 검진을 놓쳤습니다. 오늘 반드시 꼭 해야 하는 일들, 가령 강의 준비, 발제 준비 등 저의 업무들과 식사 준비, 아이들 등원 및 하원, 빨래 등 가사 일을 하다 보면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은 미뤄지게 됩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크고 있는 것 같아서, 또, 둘째라는 이유로 여차저차 검진을 미루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9개월 때 어린이집에 등원하면서 2차 영유가 검진은 미룰 수가 없게 됐습니다. 어린이집에 검진 자료를 제출해야지 입소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차 영유아 검진 시기가 오면 바로 제출하겠다고 원에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먼저 등원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8시 30분에 아이 둘을 맡기고 대학원으로 출근하고, 다시 4시에는 아이를 픽업해서 육아와 가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컴퓨터로 업무를 보는 남편에게 둘째 영유아 검진 문진표 작성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영유아 검진 당일, 문진표를 한참을 보신 간호사 선생님께서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어머니, 아이가 소근육 발달 이상, 인지 발달 이상인 것 같은데 제대로 체크하신 것 맞으시죠?”        




아차! 싶었습니다.

남편이 몇 주 동안 야근으로 아이들 잘 때 들어와서, 잘 때 출근하며 아이들을 보지 못했는데, 하루하루 크는 우리 둘째는 그동안 그렇게 많이 자라 있었던 것입니다.  


상황 판단을 위하여 남편이 체크한 문항을 살펴봤습니다.

- 손잡이를 사용하여 컵을 절대 잡지 못한다.
- 우유병을 혼자서 잡고 먹을 수 없다.
-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과자를 절대 집을 수 없다.
- 장난감에 있는 버튼을 눌러 소리가 나게 할 수 없다.
- 자신이 좋아하는 한 개의 장난감을 가지고 3-4분 정도 놀 수 없다.
- 아이가 내는 소리를 어른이 따라 하면, 아이가 그 소리를 다시 따라 할 수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체크할 수 있는지 황당한 마음에 꺼이꺼이 계속 웃음이 났습니다.     


‘동영상으로 맨날 보내주는데도 모르냐, 인간아!!’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남성의 가사 분담률 16.5%, OECD 최하위]

2017년 고용부가 OECD와 한국노동패널 조사를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 남성의 가사 분담률은 16.5%로, 조사 대상 OECD 26개국 평균(33.6%)을 훨씬 밑돌면서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남성의 가사 분담률이 낮은 주요 요인으로 두 가지가 꼽혔는데, 첫째, ‘그래도 육아는 엄마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둘째, 아빠가 가사노동에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한국기업의 장시간 노동문화’가 꼽혔습니다. 영유아 검진 해프닝이 웃기지만, 단순히 웃고만 넘어갈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현모양처 숭배 사상]

육아는 여성만의 몫이라는 인식의 근원은 어디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그 근원은 19세기 산업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산업화 이후 일의 값어치를 임금으로 나타내는 유급 고용이 등장하며, 출산, 양육 등은 여성의 생물학적 본성으로 취급하며 생계비를 벌기 위한 '진짜 일'과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현모양처 숭배인데, 여성의 자연적 위치는 가족을 돌보는 집 안이며, 양육 활동은 여성의 본성 중 한 부분임으로 진짜 일은 아니라는 이데올로기를 의미합니다. 이때부터 공적 영역 대 사적 영역, 생산 대 소비, 경쟁과 양육, 노동 대 여가 등의 이분법적인 사회관이 형성되기 시작하며 출산과 양육, 가사는 여성의 역할이 된 것입니다.




@TV조선 아내의 맛, 남편 진화의 산후우울증



[독박 육아의 주체가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뀌면]

지난 9일 TV조선 '아내의 맛'에는 함소원의 남편인 진화가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는 모습이 나오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전문의는 "지금 정말 잘하고 있고, 좋은 아버지다."라고 진화를 위로했지만, 진화는 "저를 알아줄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내도 일하는데 바쁜데 부담을 주는 것 같았다. 혼자서 소화하려고 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독박 육아에 눈물을 쏟는 진화의 모습은 독박 육아를 하는 30-40대 여성들에게 큰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함소원의 남편 진화가 이렇게나 힘들어하며 혼자 육아를 감당하는 것을 보니, 와이프인 함소원이 조금 더 육아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지 않나요?     



@TV조선 아내의 맛, 산후우울증 진화를 본 후 함소원에게 하는 충고


독박 육아의 주체가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뀌니 육아에 있어서 부부 모두의 참여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금 더 쉽게 이해가 가는 것 같습니다. 여성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독박 육아’를 하는 것은 조금 힘들겠지만,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남성인 진화가 혼자 육아를 감당하며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아빠와 엄마 모두가 서로 이해하며 육아와 가사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저희 부부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외출을 할 때 남편이 아이의 기저귀를 갈면 주변 어르신들께서 ‘정말 좋은 아빠다.’라고 얘기를 해주시고는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비록 속으로는 본인이 최고의 아빠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확실한 것은 서로가 노력하니 조금씩 우리 가족도 변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차 영유아 검진 헤프닝을 보면 3차 검진은 제가 해야할 것 같죠?아닙니다.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남편의 참여를 연습시켜야 합니다. 부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3차 영유아 검진 때는 보다 신뢰도 높은 결과를 기대해봅니다.


@ 현모양처 숭배 사상 참고자료_나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존 버드 저, 강세희 역

@ 메인사진_TV조선 아내의 맛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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