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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in Pangyo Mar 15. 2019

워킹맘,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선생님이 단 한 명?!

#연봉은 2,300만원



집 근처에 유명한 어린이집이 하나 있습니다. 이 어린이집은 선생님이 한 명뿐이라고 합니다. 누군가는 선생님이 혼자 어린이집을 돌보는 이유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매우 커서라고 했습니다. 담임교사도, 특별활동 강사도, 급식 선생님도, 운전기사도 없습니다. 직접 아이를 돌보고 직접 급식을 만드십니다. 장도 직접 보시고, 설거지도 직접 하십니다. 아이 등원과 하원도 시켜주시고, 신체 활동 놀이나 책 읽기처럼 특별활동 수업도 직접 진행해주시죠. 가끔씩 물감 놀이도 하고,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면 놀이터도 나간다고 하셨습니다.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종일반이라서 부모가 일하는데 아이 보육이 문제 되지 않도록 아침 식사부터 저녁 샤워까지 맡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많은 직장 부모들이 선호하는 이유는 자정까지도 아이들을 봐주셔서 책을 읽고 아이들이 잠이 들면 그때 아이를 픽업 가도 된다는 점입니다. 어떤 부모는 0세 반에 돌 전 아이를 맡겼는데, 선생님은 아이가 깨어 있을 때 아기띠를 하고 장도 보실 수 있고, 급식도 만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연봉은 2,300만원. 그러니까 노동의 가치가 시급 3천원도 안된다는 뜻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이 어린이 집에 남아있는 원동력은 무엇일지 궁금해졌습니다.




남편에게 이 어린이집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한 질문이라는 듯이 '별로'라고 했습니다. 육아의 질이 매우 안 좋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눈치가 빠른 남편은 이 어린이집이 어느 어린이집인지도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이 어린이집은 바로 저희 집이고, 그 선생님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어린이집은 '독박 육아'를 하는 이 시대의 모든 여성들의 집이고, 그들은 모두 선생님이 한 명뿐인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엄마 선생님입니다. 그 선생님은 20대일 수도 있고 30대나 40대일 수도 있습니다. 고졸이거나 전문대 졸업생일 수도 있고, 명문대 출신이거나 석사 이상의 고학력자 일수도 있습니다. 그 선생님은 전업주부일 수도 있고 직장에 다니는 엄마일 수도 있습니다.




전업주부는 육아와 가사의 전반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지만 국민총생산(GDP)이나 일인당 소득 지표 등에서는 제외됩니다. 출산과 양육과 같은 일은 여성의 본성이자 본능적인 부분이며,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족을 돌보는 집이 여성의 자연적 위치이고, 무보수인 돌봄 노동은 '진짜 일'과 분리되는 영역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얼마 전 처음으로 정부에서 가사노동의 가치를 금전적으로 환산해보았습니다. 주요 가사노동이은 연봉 약 2,300만 원, 월급으로 약 190만 원 정도의 노동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이 중 동식물 돌보기 등의 가사노동 항목을 제외하면 그 금액은 더욱 낮아질 것입니다.

반면, 직장 여성은 아침엔 직장으로 출근하고 저녁에는 돌봄 노동의 현장으로 출근합니다. 2교대 근무조인 것이죠. 미네소타 대학교 칼슨 경영대학 석좌교수이자 인적자원 및 노동연구센터 소장인 존 버드는 그의 책 '나에게 일이란 무엇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성은 여전히 집안일을 궁극적으로 책임지며 현모양처 숭배는 계속되고 있다.
집 밖에서는 일하는 여성에게조차 현모양처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그대로 적용된다.
용어 자체에 이미 가사 노동의 의미가 빠진 이른바 ‘직장 여성’은 흔히 돈을 받는 직장에서의 하루가 끝난 후에도 또 모든 집안일을 ‘2교대로’ 또는 ‘밤낮으로’ 해야만 한다.
(존 버드, "나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200p)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주부도, 회사원도, 학생도 그 종류는 다르지만 일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일'을 하느냐가 그 사람을 규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존 버드는 이보다 그 사람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 가사노동과 같은 형태의 일도 광의의 개념의 '일'에 포함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말이죠. 육아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전업주부와 워킹맘이라는 이분법적인 그룹으로 나누는 프레임에 얽매이면 안 됩니다. '엄마'가 되는 순간 우리 모두 돌봄 노동을 바라보는 전통적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아침, 유치원 갈 준비를 하는데 첫째 주완이가 묻습니다.

"엄마, 아침이 됐는데도 왜 자꾸자꾸 아빠는 집에 안 들어오는 거야? 아빠 진짜 이상하다, 그치?"


벌써 금요일 아침이 다가오는데 이번 주도 아이들은 아빠 얼굴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게다가 오늘처럼 주완이가 갑자기 열이 39도까지 나는 날이면 아이들도, 엄마도 아빠의 빈자리가 더그립습니다. 오늘은 아이들이 아빠와 신나게 놀고 자는 '불금'을  꼭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새벽 1시, 주완이 열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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