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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in Pangyo Oct 15. 2019

워킹맘, 남편 자랑

#오래 일하려면 꼭 필요한 이것


남편을 오랜만에 봤습니다. 저녁을 같이 먹은 것은 그보다 더 오래전 일입니다. 오늘은 잘하면 아이들이 아빠 얼굴을 보고 잘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아이들이 잠에 들자마자 남편이 집에 들어왔습니다. 남편은 배가 고프다며 라면을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분명 저녁을 먹고 온다고 했는데, 또 일이 바빠져 끼니를 거르고 일을 하다가 퇴근한 모양입니다. 많이 피곤해 보였습니다. 늘 괜찮다고 말하며 힘든 기색을 비치지 않는 남편이지만, 이제는 말하는 입 꼬리만 봐도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남편에게 먼저 씻고 나오라고 하고 라면과 어묵탕을 준비했습니다.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마음에 라면에 계란도 풀어 넣고, 양파와 쪽파를 썰어 넣었습니다.     


식탁에 앉은 남편은 저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끓여먹어도 되는데 라면을 끓여준 것, 라면만 줘도 되는데 어묵탕도 차려준 것, 냄비 채 줘도 되는데 그릇에 예쁘게 담아준 것들이 말입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자주 지치고 힘든 일입니다. 특히나 잘 나가고(?) 바쁜(!) 남편이 있을 때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감당해야 할 몫들이 더 많아진 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단 5분도 쉴 틈이 없이 일과 육아, 가사가 이어집니다. 6시에 기상을 하고 출근 준비와 등원 준비를 시작합니다. 7시 전에 둘째가 일어나면 아침을 먹이고, 씻기면서 첫째 아침을 차립니다. 어젯밤에 해두지 못한 설거지와 빨래도 틈틈이 갭니다. 7시 25분, 시부모님이 오시면 7시 30분에 집을 나섭니다. 월요일은 차가 막혀서 이때 출발해도 강의 시작 5분 전에 간신히 주차장에 도착하고는 합니다. 강의를 마치고는 바로 수업에 갑니다. 쉬는 시간에 커피 한 잔과 핫도그로 점심을 대신합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출발합니다. 보통 4시 45분경 집에 도착합니다. 10분 동안 청소기를 돌리고, 5분 동안 분리수거를 합니다. 둘째 픽업은 5시, 첫째의 어린이집 차 하원 시간은 5시 17분입니다. 하원에 성공하면 함께 마트, 병원 등에 갑니다. 집에 와서 아이들을 씻기고, 저녁을 준비하고, 저녁을 먹이고, 아이들이 TV를 보는 동안 집안일을 합니다. 아이들 어린이집 가방도 정리해야 하고, 알림장을 확인해서 준비물도 준비해야 합니다. 저도 씻고 나오면 함께 공룡놀이를 하고, 책을 읽어주고 잠자리에 듭니다. 이때가 따로 공부를 가르칠 시간이나, 함께 몸으로 즐겁게 놀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지만,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넘겨버리는 시간입니다. 9시 무렵 잠자리에 들면 10시경 아이들이 잠이 듭니다. 저는 다시 일어나서 할 일을 시작합니다. 논문을 읽고, 발제를 하고, 논문 준비를 하고, 강의안도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가 울기 시작합니다. 새벽 한 시쯤이 되었나 봅니다. 그리고 아침 해가 떴습니다. 다시 출근 준비와 등원 준비를 시작할 시간입니다.     



시간에 쫓기고, 체력에 지치고, 잠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물리적 어려움보다 저를 더 어렵게 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남편이나 아이들, 등원을 도와주시는 시부모님 모두에게 짐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입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6년이 넘도록 트레이닝을 받았는데도, 이러한 마음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것은 어찌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 날도 그랬습니다.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나만 좋은 것은 아닌지. 우리 아이들과 가족들이 나 하나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 건지,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인지, 이런 종류의 생각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마 남편은 이미 알고 있었나 봅니다. 제가 ‘여보세요’라고 말하는 것만 듣고도 제가 어떤 상태인지를 아는 사람이거든요.     



'고마워. 나는 집에 오면 너무 행복해’    



남편의 한 마디에 걱정하던 모든 생각들이 다시 흩어져 없어집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마음들이, 다시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빠르게 없어집니다.


둘 다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어서,

이 시기가 원래 제일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오히려 그러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서로에 대한 배려들이기에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미안한 마음들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때마다 대처하는 확실한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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