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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in Pangyo Mar 10. 2019

워킹맘에게 남편이 열심히 산다는 것

#월화수목금토일 독박 육아



저는 꽤 객관적인 편입니다. ‘객관적이다’라는 표현이 참 주관적이지만 저는 꽤나 객관적인 편입니다. 인정이 빠른 것, 포기를 잘하는 것,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하지 않는 것 모두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몇 년째 반복되는 상황인데도 또다시 감정적이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반복적이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일인데 도무지 컨트롤이 되지 않습니다. 바로 독박 육아를 하며 지치고 힘내기를 반복하다가 에너지가 방전된 그 순간입니다.

 


오늘도 새벽 5시 반에 하루를 시작했는데, 저녁 11시가 되도록 남편은 퇴근하기 전입니다. 9개월 된 둘째는 재워달라고 울고 6살인 첫째는 자기도 안아달라고 웁니다. 아이들이 울음을 다 그치고 잠자리에 들 때쯤이면, 저도 울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어떤 엄마는 이때 아이들에게 화가 많이 난다고 하고, 어떤 엄마는 육아가 감당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져 도피하고 싶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날이면 마음이 슬퍼집니다.

출산과 육아가 커리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남편이 부럽고, 그 날이 앞으로 몇 년간은 나에게는 오지 않을 날들이라 슬퍼집니다. 혹여나 나의 헝클어진 감정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고, 오늘 하루 내가 온전히 아이들의 생명과 사랑스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 더 슬퍼집니다.


 

@Insideout, Sadness



남편은 "많이 바쁜"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매일 새벽 6시 10분에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을 합니다. 대부분은 밤 11시쯤 퇴근하고, 종종 새벽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쯤, 가끔 여유로울 때면 저녁 7시나 8시에 오기도 합니다. 저도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했기에 ‘평범한 직장인’이 얼마나 바쁘고 치열한 하루를 사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남편은 평일에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주말에는 열심히 공부합니다. 회사에서 AI CPA(미국 회계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모든 학원비, 미국 비행비 그리고 숙소 비용까지 지원을 해 준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기한은 2년입니다.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 일을 줄이고 공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행히 남편과 같은 직장인들을 위해 저녁이나 주말에 또는 온라인으로 준비하는 학원이 있었습니다. 평일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남편은 주말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토, 일 10시간씩 수업을 하면 2년 이내에 4과목 전부를 합격하는 코스입니다. 합격률도 꽤나 높다고 합니다.



이 기쁜 소식이 저에게 주는 의미는

주중 육아는 물론, 어린이집의 도움이 없는 주말까지 아이 둘 육아가 온전히 저의 몫이 된다는 뜻입니다.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첫째는 한참 손이 많이 가는 6살이고, 둘째는 돌도 되지 않았습니다. 저도 박사과정 수업 4과목에 논문세미나까지 수강하고 있었으며, 인재개발원 소속 강사로 강의도 진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부재한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가 저를 잃지 않고 이 장기 마라톤을 끝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습니다.





불과 10개월 전만 해도 아마 남편의 학업을 마냥 기쁘게 응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삭인 둘째를 뱃속에 품은 채로 일을 했을 때, 남편이 퇴근이 조금 더 빠른 회사로 이직을 하는 것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업무 강도도 센 회사를 다니면서, 둘째를 품은 채 첫째를 보살피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두 번째 육아휴직을 하자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한 번 남편의 도전을 온 마음으로 지지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 워킹맘일 때보다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자 삶이 더 여유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임신 중 하혈과 조산끼로 체력적,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것도 있고, 왕복 3시간이 넘는 긴 출퇴근길이 없어진 것도 큰 요인일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조금 더 현실적인 이유입니다. 육아휴직 후 저의 복직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한 명일 때와 두 명일 때 마주하는 어려움들의 수준이 달라졌습니다. 누군가 한 명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벌이를 해야 했고, 현실적으로 저보다 연봉이 1.5배 이상 많은 남편이 그것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출산과 양육으로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저 하나로도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여성'이고 ‘엄마’라서가 아닙니다. 저는 회사를 다니면서 늘 다른 꿈을 꾸고 있었는데, 남편은 회사 생활을 할 때 자기 옷을 입은 것처럼 즐겁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남편은 본인의 회사에 로열티가 높고, 그곳에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재미를 느끼는 것 같지는 않지만 자기 분야에 대한 욕심과 호기심이 많고 높은 책임감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반면, 저는 일 자체는 계속하고 싶기는 하나, 회사 로열티도 상대적으로 낮고 마케팅이라는 업무가 내가 앞으로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한 회의가 늘 있었습니다.회사를 다니면서도 계속해서 심리학 공부를 이어나가고 싶었습니다. 특수대학원을 다니며 그 끈을 꾸역꾸역 잡고 있었습니다. 리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강력했던 것인지, 둘째 아이라서 그런지 어쨌든 9개월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박사 과정을 시작할 정도로 심리학 연구는 지금 제 삶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일입니다.


만약 남편이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 제가 심리학 공부를 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그 꿈을 향해 모든 에너지를 쏟을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가족 중 한 명이라도 날고 싶은 만큼 날아가 봤으면 하는 마음이랄까요.






제가 간절히 제 일을, 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제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이, 남편이 가정적이지 않은 사람이라서 평일과 주말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적은 것이 아닙니다.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버티어내야 하는 근무 환경을 만든 사회 제도의 문제이고 보이지 않는 관습의 영역입니다.



아빠의 육아휴직 도입, 유연근무제 등의 제도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사인입니다. 아빠의 육아 참여도를 높이기 위하여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제'가 2014년 신설됐고, 2019년부터는 두 번째 육아휴직자의 첫 3개월 육아휴직 급여 월 상한액을 200만 원에서 250만 원으로 인상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언론에서는 남성 육아휴직자가 얼마나 크게 증가했는지에 초점을 두어 보도하고 있습니다. 2018년 남성 육아휴직자가 전년 대비 46.7% 증가한 17.8%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고용노동부) 다른 말로 하면, 아직도 육아휴직 사용자의 82.2%가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고용노동부, 남성육아휴직자수


나아가 그나마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있는 남성 중 약 60% (58.5%)가 300인 이상 대기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대기업에 종사하는 남성 직원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데도 큰 어려움이 있다는 인터뷰들이 끊임없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즉, 제도적인 것들이 보완되고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관습적인 것들이 바뀌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2015년 첫째 육아휴직을 사용할 때만 해도 조직 내에 육아휴직을 1년 동안 사용하는 여성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18년 둘째 육아휴직을 사용할 때는 같은 시기에만 5명의 동료, 선배들이 육아휴직에 들어갔습니다. 육아휴직이 그때는 없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조직 분위기'가 바뀐 것입니다. 육아휴직을 쓸 때 받았던 차가운 눈초리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꼭 육아휴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52시간 근무를 하고 퇴근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벌써 퇴근해?'라는 질문을 받지 않도록 사회가 변화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문제의식은 있는데 방법론적인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사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걸어가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말에도 제가 아이들을 보고 남편이 공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더 열심히 내 몫까지 즐기며 공부해달라고 남편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남편이 제 마음에 공감해주고, 저의 독박 육아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거면 힘들었던 오늘 하루 조금은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같은 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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