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ily in Pangyo Mar 26. 2019

워킹맘, 왜 그렇게까지 일하고 싶으세요?

#복직 후 듣는 질문 1.



일하는 엄마가 되고 나서는 아이를 낳기 전에 듣지 않았던 낯선 질문들을 많이 듣기 시작합니다.

그중 하나가 ‘아기랑 보내는 거 즐겁지 않아? 일이 그렇게 재미있어?’라는 질문입니다.    


‘왜 그렇게까지 일을 하고 싶어?’

     

사실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입니다.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하는 저에게 아무도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대학생 때 복수 전공도 하고, 잠을 줄여가며 여러 가지 대외활동과 사회 경험을 쌓아갈 때도 사람들은 저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사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취업 준비를 할 때는 ‘마케팅’을 하고 싶어 하는지 면접을 보기 위해서라도 고민해야 했지만, 왜 취업을 하고 싶어 하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저도 제가 왜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학창 시절에, 그리고 대학교 때 그렇게 열심히도 공부하고 치열하게 보낸 이유가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상상하며, 그냥 그 일을 하기 위해서였지, 살면서 왜 '일'이라는 것을 하거나 또는 하지 말아야하는지는 고민해본 적이 없습니다.

 


가고 싶던 회사에 그룹 공채로 입사를 하고, 처음으로 월급도 받고, 나의 업무가 생기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힘든 점도 많았지만, 분명히 기쁨도 있었고 성취감도 있었습니다. 이 순간을 위해 달려왔지만, 겨우 이제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 The Intern, 2015 (영화 인턴)



그리고,이를 낳는다는 것이 제 일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일을 포기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복직을 하고 알았습니다. 출산과 양육이 일을 포기하는 그런 일은 교과서로 배웠고, 신문 기사로 접했고, 1990년대에 끝난 줄 알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시대는 조금 다를 줄 알았습니다. 제가 몰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겨우 5년, 길면 10년 이내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이 겪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요.    



‘왜 그렇게까지 일을 하고 싶어?’
‘일이 그렇게 재밌어?’
‘아이 키우는 사람 구하는 것보다
 네가 더 많이 벌어?’
‘남편 돈 잘 벌지 않아?
꼭 너도 벌어야 해?’
‘아이랑 같이 있는 거 즐겁지 않아?’   
 


아이를 낳고 나니 도대체 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말하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저도 이유를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나는 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꼭 일에서 손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렸을 때부터 일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서 그런가?'

'이 일을 그렇게 좋아하나?'

'아니면 솔직히 말해서 돈이 필요한 것일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일을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사수하고 싶은 만큼 사랑하지는 않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워커홀릭이 아니었습니다. 마케팅이라는 일이 나랑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가끔은 아예 회사를 벗어나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은 하고 싶었기에 더욱 고민이 깊어갔습니다.


특히나 아이랑 있는 시간이 행복하지 않냐며, 왜 일을 하냐고 묻는 질문에는 일을 한다는 것이 꼭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그럴듯하게 대답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이 질문은 답이 있는 질문도 아니고,

꼭 답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요.


제가 일을 하는 이유는, 전세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고, 아이 둘을 키우기 위한 생계 목적도 있고, 꼭 생계 목적이 아니더라도 친구들 만날 때 밥을 사는 것, 부모님 용돈을 드리는 것 등등 제 힘으로 돈을 벌어서 제가 쓰고 싶은데 쓰고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비단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을 하는 것 자체가 제 삶의 기쁨이고 원동력입니다. 사회적인 기여와 참여의 의미도 있습니다. 여성인 제가 투표를 하고, 박사 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성인 투표를 할 수 있었던 게 채 70년이 되지 않은 일이고, 이렇게 사회 참여가 늘어난 것도 최근의 일입니다. 1980년대에 태어난 덕분에 우리 엄마 세대가 누리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도 저의 먼 인생 후배인 제 딸이 제 나이가 되었을 때는 더욱더 온전히 중요한 곳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오늘 더 노력하고 싶습니다.




저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일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제가 하고 싶으면 됐습니다.

그걸로 끝입니다.


왜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아직도 머뭇거리고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이제는 그들이 왜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이유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랑하고 일하라.
일하고 사랑하라.
그게 삶의 전부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영화 인턴의 명대사로 알려져 있는 이 말은 정신분석이론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한 말입니다.

왜 일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더라도, 저에게 너무나 소중한 남편과 가족들이 저를 지지해주는 이상 저는 흔들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쫄보 워킹맘은 오늘도 힘을 내서 한 걸음씩 걸어갈 용기를 냅니다.    




* 저는 가사 노동이나 돌봄 노동같은 현재 무급 노동의 영역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내용을 다루기 위하여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임금노동'(wage labor)을 '일' 규정하고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이전 01화 육아휴직 중 대학원 석사학위를 취득한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