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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in Pangyo Apr 03. 2019

워킹맘, 오늘은 죄인이 된 기분입니다.

#복직 후 찾아오는 감정

  

계속해서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영화한 편 볼 시간이나, 햇볕 좋은 날 책을 읽거나, 또는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것처럼 제가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여유는 없지만,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아이들도 잘 커주고 있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날들입니다. 요즘만 같다면 쉬지 못하는 것 정도야 괜찮습니다.     



지난주에는 대학교에서 강의를 잘 끝냈습니다. 제는 남편과 3년 만에 둘이서 점심먹었습니다. 2시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점심을 먹는 동안 ‘이런 시간이 오긴 오네.’라며 신기해하며 몇 번이나 중얼거렸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중요한 발표를 하나 잘 끝냈습니다. 새벽까지 PPT를 고치기를 참 잘했습니다. 지난 몇 주 참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씩씩하게 잘 지냈습니다. 특히나 오늘처럼 중요한 발표가 잘 끝난 날에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느꼈던 피곤함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는 듯이 마음이 홀가분하고 조금 뿌듯하기도 합니다.    



그래, 내가 이런 소소한 기쁨 때문에 힘을 내지.'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문자가 옵니다.     



"어머니 낮잠 자고 나서 체온을 재보니  37.4, 37.6 점점 열이 오르네요. 38도 넘으면 원에 있는 해열제를 먹일까요?"




9개월이 되자마자 어린이집에 다닌 둘째 주하가 열이 오른다고 합니다. 첫째도 9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아오는 첫날 참 많이 울었습니다. 복직 전에 엄마인 제가 직접 어린이집 적응을 하고 싶어서 한 선택이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둘째도 첫째와 비슷한 개월에 어린이 집에 등원을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 달랐던 점은, 첫째는 저와 적응 기간을 3주를 가졌다는 것과 둘째는 적응기간 없이 셋째 날부터 바로 8시간씩 어린이집에 있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어린이 집에 다니기 시작하면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20분 뒤 선생님께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38도네요. 약 먹일게요."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열이 더 오르면 어떻게 하지?’

‘혹시 급성 중이염인가?’

‘전염병은 아니겠지?’

‘오늘 집에 바로 가도 병원은 문을 닫을 텐데, 밤에 괜찮을까?’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아이에게 달려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습니다.



@ 영화 말아톤  (2005)



이런 날 저는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  

이런 날 제가 느끼는 감정은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지배적입니다.


제일 먼저 아픈 딸에게 미안합니다. 10개월밖에 안 된 아이가 아플 때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을까, 열이 펄펄 나는데도 어린이 집에 맡길 수밖에 없어서 딸에게 미안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픽업해주시는 시어머니께 죄송합니다. 시어머니도 감기 때문에 힘드신데, 아픈 아이를 안고 계시느라 얼마나 힘드실까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오늘은 어머니가 병원에 가셔서 돌쟁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시누이가 아이를 픽업해주기로 했습니다. 돌쟁이 아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제 아이까지 픽업해서 돌봐줄 시누이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또 혹시나 주하가 감기라서 조카에게 옮기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따라옵니다. 착한 시누이는 주하를 병원까지 데리고 가준다고 합니다. 저도 아이를 키워본 지라, 집  병원이라도 아픈 아이를 데리고 가서 기다리고 진료를 받는 것이 얼마나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인지를 알기에 너무 미안합니다.        


 

회사에서 몰래 울 때도 많았습니다. 어느 날은 신제품 출시 관련 저녁 좌담회가 있어서 저녁 10시쯤 좌담회가 끝나고 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응급실에 가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첫째 주완이가 고열로 시달려서 응급실에 갔는데, 저의 '중요한 일'에 방해가 될까 봐 연락하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좌담회가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정을 추스를 틈도 없이 눈물이 나시작했습니다. 엉엉 울며 택시를 잡고 서울대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이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너무너무 미안하고 죄송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미안하고’ ‘죄송하고’ ‘죄인으로 느껴지는’ 마음이 자동적으로 올라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르게 마음이 분주해질수록 천천히 생각해보려 했습니다.




STEP 1.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먼저, 저는 지금 당장 아이에게 달려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열이 나는 아이 옆에 제가 있다고 열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의 마음과 상황을 어린이집 선생님께 전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저보다 워킹맘 선배님이시고, 또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하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분이시니까요.    


(나) '선생님, 바로 픽업을 가고 싶은데 바로 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죄인이 된 기분이에요. 주하 잘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저의 연락에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울 주하 커가는 과정 중의 일부분이지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주하 선생님의 힘이 되는 카톡




STEP 2. 나의 감정을 나누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죄인’된 기분을 남편과 나눴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남편은 본인을 ‘죄인’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주변을 보면 대부분 엄마는 이런 감정을 느끼는데, 아빠는 이런 엄마들을 신기해합니다. 저희 남편도 제 기분을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제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이 기분을 왜 모르지 신기할 정도인데, 남편은 오히려 모든 게 엄마 잘못 같다는 제가 신기한가 봅니다. 아이가 열이 나는 것이 저의 잘못인 것 같고 제 탓 같은 것은, 제가 상황을 그렇게 해석한 것이고, 제가 느낀 저의 기분인 것입니다.  


(나) ‘으. 이런 날 나는 또 죄인이 된 기분이야.’


라는 저의 문자에 남편이 대답합니다.    


(남편) ‘괜찮아.’ ‘나도 오늘은 일찍 갈게.’    


남편은 아이가 열이 나는 것이 본인 때문이 아니듯이, 엄마인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아이는 크면서 아픈 것이고, 오늘은 아이가 아픈 날일 뿐입니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아이가 열이 나는 것을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던 것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항상 같은 편을 하기로 한 남편




STEP 3. 미 대 신 고마움을 전하기

저의 에너지 총량은 정해져 있어서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모든 에너지를 쏟으면, 나머지를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래서 어린이집 선생님, 시어머니, 오늘 같은 날이면 시누이에게 미안함 대신에 고마운 마음을 가득 담아 전했습니다. 제가 빚진 거라는 무거운 마음에서 벗어나, 저를 도와주는 가족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합니다.     


(시누이) '뭐가 그렇게 미안하고 고마워. 가족인데 당연한 거지.

시누이의 따뜻한 말에 너무 고마워 돌아가는 차 안에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육아는 저의 책임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걸 그만둘 용기도 없으면서 말입니다.



아이는 엄마가 옆에 있어도 아프고,

옆에 없어도 아픕니다.

성장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우리 엄마들이 추구하는 건
결코 완벽이 아닙니다.
그저 최선을 할 뿐이에요.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은영의 화해 중)



맞습니다. 저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고 완벽한 엄마가 될 수도 없습니다.

매일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특히나 오늘 같은 날이면, 저의 감정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데, 자꾸 엄마가 죄인 같은 기분이 올라오려고 합니다.


오늘 하루, 죄인 같은 마음에 모든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 감정을 선택하는 주인은 저뿐이니까요.



이렇게, 오늘 하루도 다시 힘을 내 봅니다.


우리 엄마들 모두,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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