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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Jun 14. 2023

클래식 음악 1.

이모

시대와 어울리지 않게 넉넉했던 나의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방이 여럿이었고 막내 이모가 함께 살았다. 이모와 결혼을 약속한 남자는 월남전에 참전 중이었으나 곧 전역을 앞두고 있기에 미리 혼인날을 잡은 상태였다. 이모와 내가 이불 위에서 똑같은 빛깔, 똑같은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고 손을 잡고 빙글빙글 춤을 추던 기억이 난다. 시집간다고 준비했던 연한 분홍색 잠옷 원피스를 이모는 조그만 사이즈로 사랑하는 조카에게도 사주었다. 그 공주 잠옷이 나에게는 너무 예쁜 드레스였다.


그러나 어느 날, 이모의 시댁이 될 뻔한 집으로부터 우리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받았다. 아들이 전사했다고... 이모는 연분홍 잠옷을 버리고 우리 집에서 나갔다. 그러나 나는 몸이 커져 못 입을 때까지 레이스가 뜯어질 때까지 연분홍 잠옷만 입고 잠을 잤다. 엄마는 버리자고 했지만 나는 너무 예뻐서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고집쟁이였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이모가 다시 우리 집에 왔다. 그리고 또 몇 년 뒤에 나는 당시 이모의 약혼자는 전사하지 않았다는 더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전투 중에 다리와 팔을 잃은 이모의 연인은 사랑하는 이에게 전사통보를 하며 결혼을 멈춘 것이다.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이모는 우리와 같이 살았고 여전히 결혼하지 않았다. 명문이던 경기여고를 졸업하고도 대학은 포기해야 했던 이모는 나에게 영어며 수학이며 틈틈이 가르쳐 주며 직장을 다녔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 동생들이 밖으로 놀러 다닐 때에도 나는 이모옆에 붙어있기를 좋아했다.


이모는 늘 라디오의 클래식 음악 채널을 열어두었다. 끝까지 조용히 들어야 하는 곡이라며 하이든의 놀람교향곡을 미리 알려주지 않고 듣게 하다 내가 깜짝 놀라면 깔깔거리기도 했고, 곡을 들으면서 무엇이 떠오르는지 말해 보라고도 했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베토벤, 모차르트! 하며 작곡가를 알아맞히는 것도 신기하고 부러웠다. 그렇게 나는 클래식 음악과 만났다. 음악들 듣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밝아지고 힘이나기도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슬픈 마음이 드는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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