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띠이다. 빠릿빠릿한 토끼와 다람쥐 같은 동생들과 달리 (동생들의 띠는 뱀과 원숭이이지만) 나는 소처럼 느렸다. 당시에는 유치원에 보내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는데 나는 2년이나 다녔다. 엄마와 아빠가 초등학교(국민학교) 일찍 가라고 유치원을 1년 먼저 보냈건만 내 선생님은 1년 더 다니는 게 좋을 거라고 말씀하셨더란다. 두 장의 유치원 졸업사진을 보니 확실히 첫해의 것은 어벙하니 귀여웠고 두 번째 것은 똘망했다.
내가 다닌 유치원 햇수 이야기를 했을 때, 남편은 자기는 돈이 많이 든다고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고 부모님께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누나와 형도 유치원 졸업한 사진이 있더구먼) 아니, 그렇게 어릴 적부터 경제관념이 있던 분이 나를 만나 함께 살면서는 왜 딴 길로 가시는지 나는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초등학교를 몇 년 다닌 후에야 그네도 혼자 제법 높이 탔고, 학교 건물 2층에서 1층으로 빨리 내려올 수 있는 외부 미끄럼틀을 탈 수 있었다. 드디어 4학년이 되었을 때 반장이나 회장이 되면 선생님의 사랑과 친구들의 관심을 더 받는 걸 눈치채고는, 누구의 추천 없이 손을 번쩍 들고 후보에 나가 한판 연설로 반장이 되었고, 6학년에 한번 더 뱃지를 어깨에 달았다. 혼자 연설문을 만들어 출전한 교내 웅변대회에서는 메달과 상장을, 글짓기 대회에서도 상장을 가져오면 아빠와 엄마가 좋아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그러나 체육은 젬뱅이여서 학교에서 모든 학생에게 가르쳤던 수영이나 스케이트 수업에 나는 요런 저런 핑계를 대고 빠지기 일쑤였다. 나는 물도 얼음도 너무 무서웠다. 운동과 담을 쌓은 나는 급기야 대학입시 체력장 시험에서 800미터 장거리를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감정이 풍부하고 예민한 편이다. 이따금씩 아이들의 고충을 듣다 보면, 나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아 미안할 때가 많다. 그러나 아이들이 글과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고 누리며 사는 것은 기쁘다.
오늘은 토요일, 남편은 외출했고 나는 양순이와 둘이 있다. 테이블 밑에서 내가 일어서기 만 기다리는 강아지와 좀 놀아주고 스트레칭도 하고 다시 나는 3. 으로 돌아와야지. 오늘은 시간이 많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