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걸어 다니는 나의 일터는 빠른 걸음으로 20여분 가량 이면 도착한다. 중간중간에 여러 개의 아담한 횡단보도가 있는데 대각선으로 교차하는 것이 포함된 건널목도 몇 개 있다. 아이와 쉼 없이 이야기하고, 한글책과 영어동화를 읽고 노래하고, 교구를 돌아가며 이용하고, 때로는 달래고 먹이고, 함께 놀고 나서 집으로 향할 때에도, 나는 대부분 경쾌함을 유지하며 걷는다.
다만 단지를 관통해야 하는 내 짧은 여정에 '그대로 멈춰라!'는 신호등의 빨간 불빛에 막혀 교차로에 가만히 서 있자면, 단번에 목적지까지 가고 싶은 질주 의지 아니 도보 의지와 직면하게 된다. 근처에 단 한 명의 어린아이라도 보이면, 갈등은 싹도 내밀지 못하지만, 차도 사람도 없는 적막강산의 순간에는 좌우를 살핀 다음 날쌘 다람쥐처럼 냅따 내빼 목적지를 향한 다음 보도블록에 안착하기도 한다.
사방에 차가 없다면 언제라도 당당히 지나갈 수 있는 정말 스마트한 신호등이 생기면 좋겠다. 엊그제, 내가 일하는 동안 집에 와있던 딸아이가 양순이를 데리고 나를 마중 나왔다. 몇 시간 만에 상봉이라고 믿지 못할 만큼 방방 뛰며 반가워하는 강아지와 요사이 일정이 장난 아니었던 딸과 수다를 떨며 건다가 만난 빨간 신호등.
평소대로 하려다 된통 딸에게 혼났다. "엄마, 차가 없다고 그냥 가다가 어디선가 오토바이라도 날아오면 어쩌려고!!!"
사방에 차도 없고, 오토바이도 없으면, 당당히 지나갈 수 있는 정말 정말 스마트한 신호등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초록불에는 가요~, 빨간 불은 안 돼요! 하고 가슴에 양팔로 가위표를 그렸던 내가 떠올랐다.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