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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Nov 21. 2024

심청이는 효녀가 아니에요.

이제 막 아우를 본 4살 아이가 고른 책은 '효녀 심청'. 그동안 쉽고 단순한 창작이야기, 관심분야(곤충과 동물)와 학습과 인지 발달을 돕는 정말 많은 책들을 함께 읽었다. 이야기가 길어져도 끝까지 집중하는 아이에게 전래동화나 명작 쪽도 읽히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더니, 아이엄마는 연식이 있는 전집을 당근으로 구입해 아이방에 넣어주었다. 한글을 모르는 아이는 그림을 보고 낯선 책들 중 하나를 들고 내게로 온다.


전래동화를 읽어줄 때에는 대부분 그림 위에 써진 글들을 살짝 무시하고 내가 새로이 문장을 만들 때가 허다하다. 본래 옛날이야기란 들려주는 사람 마음대로이기도 하거니와 거슬리는 문장이나 거칠고 요즈음 쓰지 않는 표현들을 순하게 고쳐서 나는 읽는다.


나:  '효녀 심청'이 들고 왔구나! 그래, 음~ 효녀가 무슨 말인지 아니?

아이: 아니요. (도리도리)

나: 효녀는 엄마, 아빠를 많이 사랑하고, 말씀도 잘 들으면서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딸을 말해. 아들은 효자라고 부르지. 음~ 그러니까 **이는 엄마, 아빠 많이 사랑하는 효자겠네!


이렇게 별 생각 없이 받아 들고 출발한  효녀 심청이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물에 빠진 심봉사를 구해주고서는 공양미 어쩌고 한 스님부터 시작해서, 그 이야기를 굳이 딸에게 전하는 심봉사도 그렇고, 자기가 인당수의 제물이 되겠다고 결정하는 심청이까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쌀 삼백석을 바치면 눈을 뜨게 된다는 황당함을, 그 값을 마련하려 물에 빠져 죽겠다는 심청이를 어떻게 순하게 말할까 고민 고민하며 진도를 나갔다. 백번 양보하여 물속에서 만난 용왕에게 칭찬받고 다시 살아 왕비가 되었다면, 봉사였다가 눈을 뜨게 된 심 아무개 어르신을 찾아야지. 전국의 장님들을 초대해 잔치를 열다니... 자신이 제물이 되어도 아버지가 눈을 뜰 거라는 믿음도 없이 몸을 바다에 던진 건지... 여전히 심봉사인체로 잔치에 찾아와 비로소 눈을 뜨는 장면은 감동은 커녕 화가 났다. 나는 어찌어찌 줄거리를 마무리했고 그다음 진지하게 아이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선생님은 아무리 생각해도 심청이가 효녀 같지가 않아. 심청이가 자기 때문에 바다에 빠졌다는 소식을 아빠가 들었을 때 마음이 어땠을까? 나는 너무너무너무 슬펐을 것 같아. 심청이는 아빠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선택을 했어. 선생님이 아빠라면 눈이 안 보여도 사랑하는 딸이 바다에 빠져 죽는 것보다 곁에 있는 것이 훨~씬 좋아. 공양미 삼백석을 절에 가져다 바치면 눈을 뜨게 해 줄 거라는 스님의 말도 거짓말이었잖아. 심청이 아빠는 딸을 다시 만나 너무나 기뻐서 눈을 떴다며!


부모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께 감사하며 자신의 삶을 충분히 누리며 사는 것이 효녀요, 효자인 것을 나는 정말 확실하게 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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