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미 Nov 08. 2024

욕조

독립해 나가 있는 아들이나, 결혼한 딸 내외가 왔을 때, 하룻밤 정도 묶을 수 있는 여분의 방을 바란 적은 있지만, 지금 집의 쾌적함과 아담한 거실, 단순한 부엌을 나는 좋아한다. 그러나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무렵부터 매서운 겨울을 지나 봄이 오기까지 몇 달 동안 은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이 집에는 욕조가 없다. 어떤 이들은 있는 욕조도 부수고 샤워부스를 설치해 깔끔한 욕실로 바꾼다지만 나는 욕조를... 그 안에 뜨끈한 물을 받아 몸을 담그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남의 집에 놀러 가면 무의식적으로 이 집에 욕조가 있나 살피는 버릇이 있다. 있으면 부럽고 없으면 아쉽다. 더운 물속으로 미끄러져 비슴히 앉으면 온몸을 둘러 감은 듯한 짐들이 녹아지는 노곤함이 밀려든다. 그러다가 내 몸의 이곳저곳을 문지른다. 힘이 남아 돌 때엔 때수건에 비누를 찍어 발라 손이 닿는 곳까지 기를 쓰고 닦다가 엄마나 남편을 불러 남은 부분을 벗기고 나올 때 느끼는 개운함에 행복했다.


직전의 집에도 욕조가 없어서 플라스틱 제품을 구입해 사용했었다. 뜨끈한 물에 엄마를 담아놓고 욕실을 나오면 얼마 있다가 "이제 됐다! 때 밀어줘~~!" 하셨다. "물속에서 요기조기 다 밀어서 얼마 없을 거야"라고 엄마는 매번 말했고, 내가 '아이고, 이 때 좀 봐! 국수 같아! 국수!" 하면 엄마는 미안함이 버무려진 웃음을 터뜨렸다. 욕조 안의 엄마를 씻기는 내내 우리는 둘 다 얼굴이 벌건 체로 쉼 없이 얘기했다. 난 엄마의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가 타박을 하기도 했지만 엄마는 시답잖은 내 얘기에도 늘 웃기다며 웃었다. 엄마가 목욕하는 날은 대부분 병원 가는 전날이나 전전날이었다. 각질 있는 몸을 의사에게 보이기 부끄러워했던 엄마는 목욕을 좋아했다. 나도 그렇다.


기온이 훅 떨어진 요 며칠 전에 남편에게 말했다. "나 욕조 있는 집에 살고 싶어...."

엊그제 플라스틱 욕조가 집에 왔다. 기가 막히게 부스 안에 딱 들어갔다. 오늘 두 번째로 욕조를 사용했다. 행복하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디자인학교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