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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Mar 24. 2022

살아 있는 커리큘럼

홈스쿨 이야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기 전에, 집안 어른들에게도 생각을 알렸다. 전쟁과 가난으로 학교를 오래 다니지 못한 친정 엄마는 힘들어하셨다. 손주들이 학교에서 상을 받아올 때나 학급회장이 될 때마다 동네방네 자랑하던 낙이 없어져서다. 우리는 세상이 달라져서 집에서도 배울 수 있고, 대회도 나갈 수 있다고 설명을 위로처럼 해드렸다. 마침내 너희 부부를 믿는다며 축복해주셨다.


시댁에도 찾아갔다. 아이들의 작은할아버지께서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이렇게 훈수하셨다. 

" 그래. 오죽 심사숙고하지 않았겠느냐. 너희가 그리 결심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학교에서 미처 가르치지 않거나, 가르치지 못하는 것도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잘 알아서 할 거라며 혹시 도울 일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때다 싶어 '한자 수업'을 부탁했고 매주 한 번씩 찾아뵙고 한자를 배웠다. 그 시간은 때때로 살아있는 한국 근대사 수업이 되기도 했으며 그 속에 녹아있는 남편 집안의 역사까지 듣는 흥미로운 시간이 되었다. 


다섯 식구의 삼시 세끼 중 아침은 구운 빵이나 시리얼 혹은 얼려 놓은 떡을 해동해서 간단히 먹었고 나머지는 단품 요리가 많았다. 아이들은 한 끼의 식사가 준비되는 수고에 함께했고 설거지는 늘 당번제로 돌아갔다. 

그렇게 차례로 돌아가는 집안일은 청소 및 빨래 널기와 개기도 있는데 가끔 갈등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낸 숙제 " 왜 우리는 싸우는가"에 대한 딸아이(11세)의 글에서 그 당시 사정이 엿보인다.


" 저는 우리가 서로서로가 모두 공평하지 않아서 자주 싸우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저번에 아빠께서 서로 공평해지고 싶으면 집안일을 일주일씩 돌아가며 하자고 하셔서 제가 처음으로 설거지 1주일 당번을 맡았는데, 저는 별로 설거지하는 것을 많이 싫어하지 않아서 그냥 그럭저럭 잘 넘어 같지만,  승묵이(동생) 차례 때도 오빠 차례일 때도 1주일은 너무 많다면서 자기가 당번이면서도 남이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주는 제가 당번이지만 몸이 아주 힘들어서 오빠가 대신해주겠다고 했지만 정작 밥을 먹고 나서는 아무도 하지 않아서 엄마께서 승묵이에게 설거지를 시켰습니다. 이렇게 보아 우리는 꼭 서로가 공평하지 않다고 싸우고 혼나고 하는데 이 세상에서 살면서 모두 다 공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 마음을 바꿔야 우리가 싸우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산 신도시 끝자락 미개발지, 우리가 살고 있는 농가주택에서 산책 걸음으로 10분 정도 가면 큰 아파트 단지가 있다. 우리는 그곳의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 날을 알게 되어 종종 재미 삼아 둘러보러 갔다. 어떤 날은 셋을 모두 데리고 가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남자아이들은 들고 올 것이 있으면 도움이 되었고, 딸내미는 눈썰미가 있어서 가지고 올지 말지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버려진 물건들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고치고 닦고 광내서 요긴하게 사용하는 것도 공부라고 생각했다.


기억에 남는 물건이 있다. 바로 '재봉틀'이다. 익숙한 브랜드의 재봉틀이 버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들고 오기로 했다. 물론 고장이 났을 거라고 예상하고 말이다. '부라더 미싱 수리점'을 찾았다. 수리비 2만 원을 주니 말끔한 재봉틀이 하나 생겼다. '부라더 미싱 대리점'에서 구매자들을 대상으로 재봉 교육을 해준다고 하는데 딸아이가 배우고 싶어 한다 하니 우리에겐 추가 금액을 조금 내고 참여할 수 있는 혜택을 주었다. 그리고 몇 주가 흐른 후, 스커트가 원피스가 그리고 블라우스까지 차례로 딸의 맞춤 제작 의류들이 세상에 나왔다. 딸아이가 센터에서 배우고 오면 나는 딸아이에게 배웠다. 우리는 같은 옷감의 똑같은 디자인으로 점퍼스커트를 만들어 입고 모임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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