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아들이 제 아들을 만나기 전에 나는 갑자기 내 아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독일에 가기로 했다. 처음이다. 태어날 손주와 아들 내외에게 줄 선물을 힘껏 눌러 담은 가방을 비행기에 싣고, 남편과 나도 빠듯한 좌석에 자리 잡아 앉았다. 양쪽 저만치의 작은 창은 정말 작아서 지상과 하늘의 풍광을 볼 기회가 없었고, 비행 내내 뒷좌석의 꼬마들은 울다가 떠들기를 반복해서 힘이 들었다. 하지만 능숙한 조종사와 담담하고 순했던 기상상태 덕분에 남편이 멀미를 하지 않은 것은 정말 감사했다.
늦은 시간에 만삭의 며느리가 공항에 나와 우리를 맞았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우리 아기, 안드레아는 스페인 사람이다. 집 떠나온 유학생 시절에 둘이 만나서 사랑을 키웠다. 처음으로 아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을 때에 조심스럽게 그녀를 소개했던 것이 기억난다. 나와 남편은 망설임 없이 아들의 안목과 선택을 지지했다. 재작년 한국에서 전통혼례를 올리고, 프랑크푸르트 시청에서 혼인 서약을 했다.
아들 부부의 보금자리는 정말 오붓하고 단출했지만 시선이 닿는 곳마다 예뻤다. 며느리 취향의 아늑한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4층이라는데, 우리식으로는 5층이었다. (독일은 2층을 1층으로 세기 시작함) 층고가 높은 것이 참 좋았지만, 계단의 높이와 개수가 많아서 나는 중간에 몇 번이나 잠시 숨을 고르며 올라 다녔다. 도착하자마자 가져온 선물들을 거실에 펼쳐놓고 며느리에게 이것저것 설명하던 밤, 일을 마친 아들이 집에 왔다. 보고팠던 큰 아들을 안았다. 그리고 부랴부랴 함께 늦은 상을 차렸다. 떡갈비 반죽을 해 놓았다며 모양을 잡아 팬에 굽고, 내가 사준 대한민국 밥솥에서 푼 밥이 테이블에 올려졌다. 며느리가 좋아하는 깻잎무침을 포함해 우리 반찬들 몇 가지가 더 보였다. 그러나 모두 들뜬상태여서 식사량이 이야기 양을 따라잡지 못한 채, 얼렁뚱땅 마쳤다.
빈 캐리어를 발코니에 보관하고 나머지 짐들을 들고 에어비앤비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짧은 이별을 했다. 10분 남짓 걸어가니 작은 침대 두 개가 직렬로 길게 놓인 기다란 방의 숙소에 다다랐다. 내일 아침을 함께 먹자며 숙소까지 따라온 아들을 한번 더 안아주고 보냈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데 머리가 띵했다. 남편은 우리가 거의 밤샘을 한 것과 같다고 말해주었다. 그저 그런 매트리스 위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불을 끄고 눈을 감았는데 눈물이 나왔다. "진작에 올 걸... 이렇게 오면 되는 건데..." 안을 때마다 느껴졌던 깡 마른 아들의 가슴과 팔 그리고 피곤한 낯빛에서 그동안의 고독과 고단함이 느껴졌다. 옆으로 돌아 웅크려 누웠는데 계속 눈물이 나왔다. "미안해, 고생 많았구나.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나님, 우리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곧 태어날 아가까지... 이 어여뿐 가정을 지켜주시고 돌보아주세요." 한참을 웅얼거리다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