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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Mar 30. 2022

녹원

캠퍼스 가로수 옆 아지트



캠퍼스 정문에서 본관에 이르는 길은 제법 넓고 길다. 양 옆의 가로수는 보도블록을 옆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아름답고 든든하게 서있다. 마치 그 길을 오고 가며 사랑과 낭만과 지성을 키워가고 있는 청춘들을 응원하고 있는 듯하다.


교정 방향의 도보길 옆 가로수 왼쪽에는 오른쪽과는 달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짧은 숨은 샛길이 있고 그 안에 아담한 공간이 나온다. 테이블 없는 벤치 몇 개의 등 쪽으로는 키 작은 이쁘장한 덤불 식물과 낮은 꽃나무들도 곳곳에 터 잡고 있다.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장소다. 선배들은 그곳의 이름이 ‘녹원’이라고 알려주었다. 교정을 걷다가 반가운 친구를 만나 잠시 서서 나누는 이야기가 못내 아쉬우면 슬그머니 찾아들어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곳이 젊은 연인들이 지나는 이의 시선을 피해 숨어하는 '달콤한 키스의 명소'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신입생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내가 처음 맞은 5월의 캠퍼스는 그러나 선배들의 그날들처럼 푸르르지 만은 않았다. 사흘이 멀다 하고 뿜어대던 최루탄 가스와 함성과 곤봉과 비명이 키 큰 가로수 작은 꽃잎들마저 사그라뜨려버린 그 해 봄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가로수  ‘녹원 거기  대로 있었다. 방패든 전경들의 곤봉을 피하는 요새가 되고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 앉은 학우와 혹은 연인들의 피난처가 되어  푸른 정원. 나의 첫사랑의 기억 저편에도 또렷이 새겨져 있는 가로수  녹원이 봄이면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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