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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Apr 14. 2022

자기가 개인 줄 모르는 개

사람인 줄 모르는 사람


강릉 경포대에서 구조된 토이푸들을 보호소에서 데려온  어언 9년이 넘어간다. 이제 노령견이라 하겠는데 외모는 전혀 그렇지 않다. 보는 이마다 강아지라고 믿는 완전  동안이다. 자그마한 몸집과 그간 숙련된 나의  미용 기술 향상, 그리고 특유의 발랄한 성격과 생기 왕성한 활동 문인 듯하다.


장난감이건 돌돌 말린 양말이건 던지면 물고 달려오는 놀이의 반복이 거의 중독 수준인데, 종종 충분하다 싶어 기를 멈추면 세상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삐져 있다. 산책할 때에도 어김없이  놀이를 하고야 만다. 적당한 크기의 나뭇가지가 장난감을 대신할 뿐이다.


우리는 동네 개들을 만난다. 개들도 사람처럼 성격이 가지각색이다. 킁킁대며 서로의 냄새를 맡는 인사를 무난히  마치고 헤어지는 개가 있는가 하면, 저만 맡고 제 것은 못 맡게 하는 녀석도 있고, 보자마자 싸우자고 덤비는 놈도, 제발 같이 더 놀자고 폴짝되는 귀요미들도 있다.


가끔 희한한 애들을 만난다. 주인 옆에 붙어서 달달 떨며 동족을 거부하는 개들이다. 강아지 시절 사회화를 못해서 그렇다는 전문가의 말을 들었다.


막내 동생의 개가 살짝 이 경우다. '아메리칸 코카스패니얼' 오래된 디즈니 만화에서 스파게티 한 가닥의 양끝을 나누어 먹는 낭만 가득한 장면에 등장한 사랑스러운 견종이다. 동생은 이 녀석을 애견 샾에서 사 왔다. 그런데 온 가족이 함께하는 산책길에 다른 개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얼음이 되거나 피하느라 바쁘단다. 우리 모카를 만났을 때에도 그랬다. 덩치는 서너 배나 큰 놈이 쬐만한 토이푸들을 도망 다니느라 안절부절이었다. "뭐 이런 개가 다 있나?!" 하듯...


이렇듯 자기가 개인 줄 모르는 개가 있는가 하면 자기가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안됐지만 후자는 끔찍하다. 생명을 쓸모 잃은 물건처럼 유기하는 사람 같지 않은, 생명을 돈으로 만 보고 가혹한 일을 불사하는, 생명을 학대하는 금수보다 못한 사람이 있다. 차라리 자기가 개인 줄 모르는 개가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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