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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Jun 27. 2022

배터리


서로의 근황을 묻고 답하는 편안한 시간이었다. 자동차 산업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이 전기차가 몰고 온 급격히 달라진 자동차 생산 시장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수많은 부속장치가 배터리 하나로 대체됨으로써 멈춰버린 예전 업종들의 침울함에 대해서 들었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과연 전기차가 환경에 이로운가 하는 질문과 함께 사실은 수십 년 전에 이미 가능했던 전기차가 이제 와서 부각되는 것도 결국 기업의 파워게임에 따른 시류라는 착잡한 결론에 이르렀다.


거리를 거닐며 혼자 만의 음악 듣기를 가능하게 했고 알아서 마룻바닥 먼지를 모으는 로봇청소기를 등장시킨 배터리. 한 산업의 지반을 뒤엎은 동력 배터리. 설계된 장치의 기능을 힘차게 해내고 나서 버려지기도 재충전되기도 하는 배터리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요즈음 나의 상황에서 먹먹한 상상을 해보았다.


우리 육체가 배터리처럼 정해진 에너지를 모두 쓰고 단번에 멈추게 된다면... 게다가 종종 남은 용량을 알 수 있다면 그래서 삶의 마무리를 각자가 의미 있게 마감할 수 있다면... 얼마간의 재충전이 가능하다면... 배터리가 다하기 전에 모든 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다가 예견된 어느 순간에 멈춤을 할 수 있다면...  그 과정에 고통을 배제할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맥없는 공상이다.


팔순에 오르시고 나서도 몇 년간 엄마는 크게 달라지지 않으셨다. 물론 20여 년 전에 받은 인공심장판막 수술 후 이러저러한 약을 복용하셨고 그 장기 복약으로 인한 간 손상과 지병이신 천식으로 인해 환절기마다 심심찮게 입퇴원 하셨지만 거동도 대화도 가능했던 엄마의 몸은 팬데믹이 시작되는 즈음부터 급격히 쇠하여지셔서 걷지 못하게 되었고 대화도 가능과 불가능을 반복했다. 대학병원과 요양병원을 거쳐 요양원에 갇혀 계시던 엄마를 요 며칠 수시로 만나고 있다. 마스크를 한 채로라도 손을 매만지고 안아드릴 수 있어 사정은 나아졌으나 온 몸 구석구석의 통증과 더불어 심장비대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괴로워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없이 고통스럽다.  


십 대의 마지막에 아버지가 떠나셨다. 의사가 예견했던 딱 그 시점에 많이 아파하시다가 우리 곁을 떠나셨다. 집에서 장례를 치렀는데 나는 추모도 이별도 제대로 한 기억이 없다. 며칠 동안 사람들이 북적였고 그들의 곡소리 속에 젊은 엄마와 어린 동생 그리고 내 울음은 다 묻혔다. 그래서 더더욱 다가오는 이별, 내가 앞장서야 할 그 일이 낯설고 겁이 난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자리에 누워 주무시다가 영면하셨다는 이의 소식을 들은 기억이 난다. 사신  수까지 가득하다면 사람들은 호상이라고 말하며 그분의 장례식에는 웃음꽃이 핀다. 친구의 시아버님이 그러셨다. 그저 배터리가 수명을 다한  같은  동화 같은 이야기가 나는 이제야 부럽다. 영혼이 육체를 이별하는 과정에 고통이 양보   주면 좋겠다. 제발 아픔이 먼저 떠나 주면 좋겠다. 살아있음의 강력한 증거이기도   고통을 마지막 순간까지 감당하는 것은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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