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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Jun 24. 2022

집에 가는 길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너무 춥거나 너무 덥지 않다면 나는 걷기를 선택합니다. 처음에는 부족한 운동을 대체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혼합형입니다. 일단 걸어가다가 그날의 피로감이나 체력소모에 따라 몸이 힘들면 중간에 버스를 탑니다.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에서 이리저리 잠깐 흔들리다 저만치 우리 동네 정거장이 눈에 들어오면 반갑게 뛰어내립니다.


마지막은 자차를 이용하는 것인데 걸으면 한 시간 가량, 버스의 도움을 받으면 30분 정도 걸리는 귀가시간을 15분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차에 시동을 걸자마자 나는 라디오를 켭니다. 같은 시간대의 두 채널을 왔다 갔다 합니다. 그날그날 기분 따라 혹은 아나운서의 멘트나 선곡된 음악을 번갈아 탐색하며 골라 듣습니다. 3시간 동안 꼬마들과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가끔씩 몸을 움직여 열심히 놀고 나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몸이 방전될 때가 있습니다. 이때 15분 동안 차 안에서 홀로 듣는 노래와 이야기에 훌쩍 빠져들면 그 잠시 동안에 나는 놀랍도록 회복되는 경험을 합니다. 그래서 천천히 운전합니다. 15분이 20분이 되어도 좋으니까요.


오늘은 클래식 기타 연주를 들었습니다. 내가 참 좋아하는 악기, 큰 아이가 처음에 잡은, 우리 집에 클래식을 안내한 설레는 악기입니다. 기타 안에 작은 오케스트라가 들어있다고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통기타와 다른 느낌의 섬세한 그 울림에 마음이 말랑해집니다. 잔잔하게 천천히 스며든 감동에 흠뻑 젖어 오늘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큰 아들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세 가지 방법 모두 마음에 듭니다. 걸으며 보았던 석양, 머리칼과 치맛자락을 휘날리던 바람, 마스크 안이어서 더 또렷했던 보도 위에서의 기도 그리고 운전대를 잡고 마음껏 불러재낀 편안한 노래 시간에 감사합니다.


살기 어렵다는 아우성이 가까이서 멀리서   들립니다. 나이 먹는다고 지혜로워지는 것도 아니고 세월이 흐른다고 뭔가 수월해지는 것도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들리고 보이는 것에 대한 반응이 여전히 미숙해서  안의 무언가가 꼿꼿이 고개를 들면 부끄럽고 낙담이 됩니다. 나는 문득 집에 가는 길을 떠올려봅니다.


허기를 채울 수 있고 쉴 수 있고 함께 웃을 이가 있는 집으로 일을 마친  나는 기쁘게 갑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언젠가 진짜 집이 나타난다는 걸 압니다. 그곳을 향해 매일 나는 묵묵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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