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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Nov 30. 2022

진료예약 확인 문자가 왔다.


[세브란스 진료예약 안내]

고객명: 이ㅇㅇ (등록번호 2557***)

진료과: 심장내과 정ㅇㅇ 선생님

진료일: 11월 23일 (수) 16:20

진료장소:(심장혈관 병원)로 내원하시기 바랍니다.



엄마의 병원 진료 동행 담당은 나였다.

거동에  불편함이 없었을 , 정기적으로 오는 진료예약 확인 문자는 바깥 약속이 일절 사라진 엄마의 일상에 '설레는 나들이',  딸과 함께 하는 '외출 알리미'였다. 엄마는 병원   들고 입고  거라며 종종 동생에게 가방이며 외투를 사달라 하셨고, 손주의 대학 캠퍼스 내에 자리잡은 병원 곳곳에서 한껏 폼을 잡고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셨다. 예약된 진료일을 거르는 일은 결코 없었고 처방된 약은  철저히 드셔서 내가 따로 신경  일이 없게 하셨다. 우리 엄마는...


숨이 차서 힘들어하시다가 그것이 심장에 생긴 문제라는 진단을 받고 '인공심장판막 수술'을 하신 지가 스무 해 가까이 된다. 그 사이 진료과는 천식 발생으로 '호흡기 내과', 백내장 수술 후  발견된 녹내장 관리와 치료로 '안과'가 추가되었고, 치아 결손으로 틀니 제작과 치아관리로 '치과' 진료도 병행했다. 비교적 최근인 5~6년 전에는 혈액암이 발견되어 '혈액내과'까지 추가되어 엄마의 병원 진료 순회 일정을 차례로 채우다 보면 일 년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그렇게 한 해가 기울 때 "내가 또 한 살을 더 먹는구나!!" 하셨다.

 

엄마는 딸이 셋이고 나는 맏딸이다. 사실은 당신에게 아들이 찾아왔었는데 당시 몸과 마음과 환경 여건이 그 녀석이 세상 빛을 보는 것을 막고 말았다. 태중에 다섯 달이나 있었던 그 '아들'을 낳았더라면... 하는 말을 가끔 읊조리듯 뱉어내셨다. 나에게 남동생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말인데 사실 나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나이 마흔셋에 딸 셋을 데리고 남편의 유산을 거덜내고 세상에 내던져진 엄마의 인생의 고단함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애들까지 덩달아 생고생을 시켰다고 엄마를 탓하는 이모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엄마를 욕하는 이모가 오랫동안 미웠다. 우린 그냥 우리를 버리지 않고 놓지 않고 삶을 내팽개쳐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같이 있어준 엄마가 고맙다.


내 엄마가 영영 떠나셨다. 86년을 사시다 가셨다. 1936년 일본에서 태어나신 엄마는 해방되어 부모님 손에 이끌려 고국을 찾았으나 부모님은 일본에서 일군 모든 삶의 근간을 담은  보따리를 부산항에 닿자마자 잃어버리셨다. 극심한 가난 위에 참혹한 전쟁을 두 번이나 겪으셨고 신데렐라를 꿈꾸며 아버지를 만났으나 딸 셋을 남겨두고 남편은 떠났다. 사람들에게 엄마는 어수룩하고 셈이 느리면서 꿈 만 아니 욕망만 많은 허접한 인생이었을지 모르지만 딸들이 모두 자라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으며 엄마는 행복한 할머니로 변신했다. 한 번도 낳아 길러본 적 없는 아들을 아니 손자를 셋이나 품에 안으셨다. 딸의 아들의 기저귀를 갈 때마다 다소 낯설었던 엄마의 눈빛이 기억난다.


비행기 조종사가 꿈이었던 엄마, 눈물 많고 인정 많지만 귀가 얇았던 엄마, 트로트보다 클래식을 좋아했던 엄마, 자리에 눕기 전까지 항상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이보다 젊었던 엄마, 딸들이 떵떵거리고 잘 사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그렇지 못해서 늘 속상했던 엄마. 밤마다 웅얼거리며 기도하던 엄마. 마지막까지 우리곁을 떠나가기 싫었던 엄마는 딸들과 사위들과 사랑하는 여섯 명의 손주를 남기고 병상에서 숨을 거두셨다.




나는 세브란스에 전화를 했다.

이제 더 이상 엄마의 진료예약 문자는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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