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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Dec 03. 2022

2022년의 기록

다사다난의 끝판

한 해가 저무는 12월이다. 지난봄과 여름과 가을의 추억이 소환되는 마지막 달이 열렸다.


신년 초, 누군가는 의기충천했겠으나 나는 새로운 더 늙어진 낯선 나이를 당황스러워하다가 어물쩍 봄을 맞았다. 여전히 코로나를 떼어내지 못한 올봄은 내내 그냥 그랬다.                                             


지난여름 더웠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부는 찬 바람이 기억 속 열기를 식혀서인가 하다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거의 에어컨을 틀어놓은 집에 만 있었다. 모카와의 산책도 해 질 녘으로 바꾸었던 게 생각난다. 더웠던 게 맞다.

독일에서 잠시 돌아와  주를 머물다   아들과 아들의 연인과 보낸 시간이 ' 여름밤의 '처럼 아련한 여름이었다. 그리고 폰으로 듣던 목소리와 화면으로 보았던 이국의 아가씨와 내가 서로 얼싸았을  과연 사랑스러운 그녀는 실재했구나 나는 안도했었다.


봄과 여름 내내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엄마를 찾아갈 때마다 여전히 손을 매만지고 가슴을 맞대는 포옹이 허락되지 않는 갑갑한 시간들이 야속했다. 다소 응급했던 몇 차례 나는 앰뷸런스에 함께 탑승해서야 비로소 엄마의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을 수 있었다.


남편이 코로나에 걸렸다.

화장실이 하나뿐인 작은 집이라 격리도 격리지만 온 집안의 환기를 철저히 하기로 마음먹고 모든 창들을 다 열어둔 체 24시간 선풍기를 돌렸다. 여름과 가을이 걸쳐있는 때라 가능했다. 때마다 정성 들여 음식을 만들어 남편이 있는 방 안으로 들여놓았다. 남편이 쾌차하고 한참 후까지 나는 걸리지 않았고 자랑이라고 여기저기 떠들었다.

 

아름다운 시월에 엄마가 떠나셨다.

십 대에 마주한 아버지와의 이별에 놀람과 슬픔뿐이었다면 육순 넘어 맞이한 팔순 넘은 엄마의 죽음에 나는 놀라지 않았다. 내가 할 일이 많이 있었다. 자꾸 정신줄을 놓고 목놓아 우는 동생들과 달리 나는 입술을 깨물고 곱게 엄마를 보내드렸다.


장례를 치르고 두 주 남짓 지나 이사를 했다.

마음은 간절했으나 가능성은 희박했던 임대아파트 추가모집에 당첨되었다. 이제 셋집 계약 만기일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니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거의 이십 년 만의 아파트 입성이다. 묵은 살림지만 아직 멀쩡한 것들은 모두 당근으로 팔고 이전의 내 것보다 조금 더 깔끔해 보이는 다른 이의 묵은 물건을 새 집에 들어놓았다.


기쁜 이사가 아쉬운 이별을 만들었다.

만 5년간 애정을 듬뿍 주고받던 꼬마 자매들과 헤어졌다.

누워있던 아가가 유치원을 가고 기저귀를 한 체로 아장아장 걸었던 언니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자매들에게 읽어주었던 동화책을 쌓으면 천장에 몇 번을 닿고도 남을 테고 셋이서 함께 한 역할놀이는 몇 부작 미니시리즈가 될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소리 내어 큰 소리로 웃고 떠들고 놀고 공부했다. 한글을 떼고 영어책을 읽어낼 때의 뿌듯함은 감히 혈육의 심정에 가까웠다고 느껴진다.

가족여행으로 서로 잠깐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영영 삶을 나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 빛나는 눈망울과 선생님 선생님 부르던 귀엽고 똘망한 목소리들이 나는 벌써 그립다.


아직 시월일 때,

독일에 돌아갔던 아들이 다시 왔다. 8일간 머물고 돌아갔다. 한국 지휘자의 세계 도약을 위해 마련된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워크숍에 7.5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젊은 지휘자 4명 중 하나가 되어서다. 아들은 바빴고 나는 기뻤다. 감격적인 짧은 재회였다.


쾌적한 새 집과 그리워하던 큰 사랑 첫 손주를 한번 더 볼 수 있었는데 그걸  놓친 엄마가 사무치게 생각났다.


십일월,

이삿짐이 거의 제자리를 찾아갈 때 모카가 많이 아프기 시작했다. 심장병이 급격히 진행되어 이별을 준비할 틈도 없이 십 년의 사랑이 떠났다. 마지막까지 온몸으로 애정을 보여주던 작은 심장이 멈추었다. 이번에는 목놓아 울었다. 나의 손과 나의 가슴에 쌓여있는 모카와의 사랑과 추억이 들숨과 날숨처럼 떠올랐다. 모카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고 통곡했다. 미안하고 고맙고 그리워서 믿을 수 없어서...


그리고 나도 코로나에 걸렸다.

밋밋하게 시작된 연초와 달리 2022년의 후반부는 온몸과 마음의 격동을 경험했다. 이렇게 한해를 마감하고 있다. 두통과 열과 근육통이 사라지고 메스꺼움과 어지럼도 진정되었는데 기침은 계속 남아 내가 많이 아팠다는 걸 알려주지만 나는 두어 달 만에 노트북을 열었다. 심호흡하며 생각을 더듬었다. 지난봄이 그리고 더웠던 여름과 많이 슬펐던 가을의 이별들과 그들의 선물 같은 새 보금자리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추억 속에서 건져낼지, 내일에서 빌려올지, 오늘을 담아낼지, 아직 모르는 내 이야기들을 다시 기록하기로 했다.

기침이 멈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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