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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Jan 05. 2023

쓸 곳을 정함

새로운 동네로 터를 옮긴  벌써 두어 달이 넘었고 해마저 새로워졌음에도, 정해놓고 글을  장소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충 소파 팔걸이  끄트머리에 앉아 작은 접이식 테이블을 두고 쓰기도 하고, 침대에서 내려오기 싫을 때면 무릎 쿠션 위에 어설프게 노트북을 올려놓고 불안불안  자씩 이어 갔다.


방이 여럿이라서 이 방 저 방 이름 중 하나 서재방의 아늑한 지점, 고개 들면 보이는 멋진 풍경은 눈을 쉬게 하고, 바라보는 양볼은 바람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면 좋겠지만, 방이 두 개뿐인 아담하고 이쁜 우리 집의 서재방이라 하는 방은 이미 아이들이 두고 간 그리고 내가 추리고 추렸지만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책들과 남편의 책 및 온라인 강의를 위한 부산물들로 가득하여 내가 얻어 쓸 공간이 남아있지 않다.


가장 만만했던 소파의 한 끝에서는 글을 쓰다가 말고 내 이야기와 비교할 수 없이 재미있는 티브이 속 창작물 안으로 빠져버리는 일이 흔해졌고, 침대에서는 장소의 본분대로 그대로 미끄러져 잠을 청하게 되는 일이 빈번했다.


마음속에만 궁리하고 도대체 결실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나의 속 이야기들이 "좀, 부지런해지라고!" 계속 속삭여왔다. 귀여운 나의 보금자리를 요리조리 살피다가 늘 밥을 먹던 동그란 원탁의 내 자리로 노트북을 옮겼다. 식탁 위 잡다한 물건들 특히 남편의 건강 간식 봉투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고, 햇살이 들고 나고 바람에 커튼이 살랑이는 베란다 창이 정면으로 보이는 연노랑 고무나무 원탁의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쓸 곳이 정해지니 개운하다. 억지로 하지 않는 일, 오롯이 나를 위해 시작했으나 혹여 읽는 이들도 좋아하게 된다면 정말 고마울 그 시간을 상상해 본다. 미소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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