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동네로 터를 옮긴 지 벌써 두어 달이 넘었고 해마저 새로워졌음에도, 정해놓고 글을 쓸 장소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충 소파 팔걸이 쪽 끄트머리에 앉아 작은 접이식 테이블을 두고 쓰기도 하고, 침대에서 내려오기 싫을 때면 무릎 쿠션 위에 어설프게 노트북을 올려놓고 불안불안 몇 자씩 이어 갔다.
방이 여럿이라서 이 방 저 방 이름 중 하나 서재방의 아늑한 지점, 고개 들면 보이는 멋진 풍경은 눈을 쉬게 하고, 바라보는 양볼은 바람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면 좋겠지만, 방이 두 개뿐인 아담하고 이쁜 우리 집의 서재방이라 하는 방은 이미 아이들이 두고 간 그리고 내가 추리고 추렸지만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책들과 남편의 책 및 온라인 강의를 위한 부산물들로 가득하여 내가 얻어 쓸 공간이 남아있지 않다.
가장 만만했던 소파의 한 끝에서는 글을 쓰다가 말고 내 이야기와 비교할 수 없이 재미있는 티브이 속 창작물 안으로 빠져버리는 일이 흔해졌고, 침대에서는 장소의 본분대로 그대로 미끄러져 잠을 청하게 되는 일이 빈번했다.
마음속에만 궁리하고 도대체 결실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나의 속 이야기들이 "좀, 부지런해지라고!" 계속 속삭여왔다. 귀여운 나의 보금자리를 요리조리 살피다가 늘 밥을 먹던 동그란 원탁의 내 자리로 노트북을 옮겼다. 식탁 위 잡다한 물건들 특히 남편의 건강 간식 봉투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고, 햇살이 들고 나고 바람에 커튼이 살랑이는 베란다 창이 정면으로 보이는 연노랑 고무나무 원탁의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쓸 곳이 정해지니 개운하다. 억지로 하지 않는 일, 오롯이 나를 위해 시작했으나 혹여 읽는 이들도 좋아하게 된다면 정말 고마울 그 시간을 상상해 본다. 미소가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