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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Mar 11. 2023

살림

가장 좋아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살림살이 일은 빨래이다.

 

청소를 좋아해서 늘 집을 반짝이게 하는 사람도 있고 요리를 좋아해서 행복한 사람도 있는데 나는 빨래할 때 마음이 가장 좋다. 물론 가끔 해야 하는 손세탁을 제외하면 세탁기가 다 해주는 셈이니 제일 힘이 들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세탁물을 챙겨 세탁기 안에 넣었다가 꺼내고 말려서 다시 접어 보관하는 모든 과정에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


지인 중 청소를 아주 좋아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감탄이 나왔다. 그러나 먼지하나 머리칼 한 가락도 거슬려하시는 그분이 내 집에 오신다고 하면 나는 바짝 긴장한다. 그 눈높이에 맞추느라 아주 힘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어질러진 것은 싫어하지만 매일 온 집안 구석구석을 걸레질하지는 않는다.


내어놓는 음식마다 실패가 없는 지인도 있다. 그 집 음식을 먹어본 많은 사람들에게서 반찬집이나 식당을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 쉬지 않고 나오는데 정작 그의 가족들은 당연하게 여기니 그것이 오히려 놀랍다.


나는 손이 느린 편인 데다가 허리가 약해서 오래 서있지 못하므로 무언가 요리라고 하는 음식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마음 잡고 완성하면 대부분 만족스럽지만 일단 시작하려면 겁이 나서 노상 손에 익은 음식만 내놓기 일쑤이다. 식구들은 그러려니 하더니 스스로 요리하기 시작했다. 아들들과 딸의 솜씨가 늘었다. 남편만 빼고...


내가 좋아하는 빨래를 할 때... 땀에 젖고 먼지가 묻고 때가 밴 세탁물들이 물과 세제와 물리적 충격을 적당히 섞어 받으며 그 오염을 떨구는 과정이 신기하고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종종 쭈그리고 앉아 돌아가는 세탁기를 바라보기도 하는데 그럴 때 마음이 편해진다. 보통 일반세탁으로 맞추고 물세제를 조금 적은 듯이 넣은 다음 헹굼은 두 번 더 추가해서 세탁기를 작동시킨다. 마지막 헹굼인데 거품이 여전한 것을 보고 나서 그렇게 한 지 오래되었다.


건조기를 사용하기 전에는 일일이 걸이에 널면서 빨랫감의 주인을 떠올렸다면 지금은 건조기에서 나온 뜨끈 뜨근한 빨래들을 하나씩 접어 개면서 그렇게 한다. 아이들이 모두 함께 살 때에는 아이들의 세탁물을 분리해 차곡차곡 개면서 그 주인들을 생각했다. 양말이며 속옷이며 겉옷들까지... 햇살에 말려진 빳빳한 옷들의 힘을 빼며  톡톡 두드려 담아 넣었는데 이제는 남편과 나의 옷과 수건만 수두룩하니 심심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각을 맞추어 하나씩 쌓아가면 여전히 마음이 편안하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몸을 감싸주고 보호하며 치장하기도 했던 옷들이 다시 정돈되어 제자리에 들어갈 때까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손을 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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