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에서 9번째 정류장

노바이 하이 스쿨의 축구부(1)

by emily

막내는 엉덩이가 가볍다.

큰 아이와 달리 확실한 남자 아이.

엄마의 책 읽어라 소리는 뒷전으로 공 만들고 돌아다니던 사내놈.

그러던 놈이 미국 이사에 이삿짐과 같이 이사를 갔다. 그렇게 간 이사라 학교는 공립학교로 가야 했고, 중학교 3년의 성적은 들쑥 날쑥..

그런 아이가 미시간의 법에 따라 10학년 2학기로 학교를 시작해야만 했고, 그런 아이가 안쓰러웠지만 나로서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침 챙겨 먹이고 도시 락싸 주고 학교엘 데려다 주는 일이 다였다.

주말에 어쩌다 만난 한국 친구나 동생을 데려오면 마우말 없이 야식을 만들어주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행히 미국 학교의 시스템은 운동 종류도 다양했다.

축구에 빠져 있던 막내에게 학교의 축구부는 또 다른 동기 부여를 제공했었나 보다.

팀원들과의 팀워크를 중시하는 학교의 축구부는 막내에게 자존감을 높여주는 또 다른 역할과 영어 회화를 더 익숙하게 해 주는 동기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그런 축구부에 들어가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틀에 걸친 테스트 , 하루는 달리기와 체력테스트, 하루는 테크닠 테스트로 그렇게 한 여름에 이틀을 치러내야 했었다.

이사 가서 반 년만에 그래도 그 축구부 시험을 치러보겠다고 본인의 의지를 타낸 막내인지라, 대견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 나에겐 한국에 있는 엄마가 인공 골반 수술을 해한다는 동생의 연락이 왔었고, 너무나 먼 거리 지구의 반대 쪽이라 가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으나 때마침 막내의 이틀에 걸친 축구부 입단 테스트 날짜와 엄마의 수술 일정이 겹쳐버렸었고, 출장이 잦은 옆지기의 상황인지라 결국 딸로서의 의무는 던져 버리고 엄마로서의 의무만을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한 편으론 막내가 장했지만 , 한편으론 딸인 내 처지로서는 죄송함 뿐이던 2011년 8월이었다.

그때 일산 살림교회의 김우겸목사님께서 엄마를 살펴 주셨고, 난 목사님께 마치 외삼촌께처럼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러고 있지만,,,

그런 저런 상황이 지나고 , 막내는 아시아 인으로는 먼저 와있던 일본 아이 두 명외엔 처음으로 축구팀에 합류하는 한국 학생이 되었다.

아마 그 결과가 그 아이가 짧고 어려운 상황을 잘 버텨내게 된 원동력이 되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기러기가족,

누군가 이 글을 읽으며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치부할 지도 모른다.

난 교육에는 그냥 기본적 관심만 아이들에게 주지 했었다.

교육에 열성이셨던 내 어머니와는 반대로 내 두 아이에게 나는 은 시야의 소유자이길 바랬지 일등을 원한 적은 많지는 않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던 나로서는 각자가 타고난 기질도 존중해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기 했고, 또한 내 욕심을 앞세운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란 사실을 어쩌면 조금 일찍 깨달은 결과일지도,,

하지만 급히 떠난 미국의 이사는 아마도 타인들에겐 내 막내 때문에 미국 이사를 해버린 로도 보였었던걸 돌아와서야 알았지만.. 그건 중요한 일은 아니다.

가서 내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내보고야 알았다

그들의 교육이 얼마나 합리적인가를..

기본을 반복시킨다. 시험 역시 같은 것을 반복해서 테스트한다.

아 아들의 의 자존감과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고무시켜준다.

그때 알았다. 왜 들 그렇게 미국이고 캐나다로 아이들을 보내야 했는지를.

반 년 뒤에 학교를 휴학하고 온 큰 아이가 부럽다고 이야기를 할 만큼 ,,

그들의 시스텝에서 배울 것들은 배웠습 싶지만 , 광활한 대지에서 태어난 그들의 운이라는 것 역시.


막내가 축구부에 들어가고부터는 픽업하는 일도 더 많아지고 기다리는 일도 배로 늘어났다.

어느 날 인가 아이들이 시합엘 가기 위해 단체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편에선 해맑게 아이들이 웃으며 공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막내가 한마디를 던진 것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엄마 저 아이들이 무슨 걱정이 있어 이렇게 드넓은 대지에서 `

그 말을 하던 그 당시 힘들게 적응하고 있던 막내가 느껴져서..

그래도 막내의 지난 시간들을 보면 그 아이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소로 보내주신 그분을,,


기도를 할 때면 난 감히 이렇게 하곤 한다.

`큰 아이는 바울과 같이 당신께서 써주시고, 막내는 요한과 같이 보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감히 난 이렇게 기도했고 기도한다.

살아오면서 엄마의 소리가 큰 경우 남자 아이들이 어떤 상황으로 성장하는지를 자꾸 보여주시는 주님께서 , 아마도 내게는 두 아이들을 내려 놓으라고 자꾸 말씀을 들려주시곤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렇게 기도하며 그렇게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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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의 등번호는 8번

노바이 하이스쿨의 축구 단복은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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