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일본이란

그와 그녀 그리고 인연

by emily

거슬러 거슬러 1995년에 만났던 옆지기의 일본 센다이 도호쿠대학의 박사과정 선배 고마자키...

비록 나이는 세 살이나 아래였지만 엄연한 선배다.

보통의 일본인 남성이라기엔 오히려 혼혈아 같았던 훤칠한 키에 서구적이던 박사과정 이 년 차의 가난한 학생이던 시절의 그.

자주 우리 집에 와 말없이 아이들과 놀아주고 무등도 태워주며 , 같이 식사를 하던 선배다.

일어가 많이 서툴던 그 시절의 나는 그릇 가득 수북하게 밥을 퍼주곤 했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 가족의 귀국 뒤에도 출장길에 집에 들러 여전히 공기 가득 밥을 먹던 시간으로 이어졌고 , 14살의 나이 어린 그녀를 데리고 결혼한다며 인사를 왔던 시간도...

그렇게 자연스레 그의 그녀 구미코와의 인연도 시작되었었다.

언젠가 웃으며 고마자키가 말했었다.

あなたの日本語は、韓国にかえでから、うまくなりました!

(너의 일어는 한국에 돌아와서 더 잘하는 거 같아!)


십여 년 전, 고마자키 부부의 초대로 처음으로 북해도를 방문하게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야기는 잠시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지난 연말의 꿈같은 소중한 만남을 이야기해 보련다.


정확히 15년 전 7월의 후반부, 북해도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준 그와 그녀를 이제야 다시 만났다.

당시 그녀의 뱃속의 태아가 14살의 건강한 청소년이 되어 , 거기에 초등학생인 동생까지 같이..


그렇게 우린 정말 오랜만의 해후에 그저 ( 우리가 보기엔 ) 그대로인 모습들에 할 말을 잃기도...

부부이던 그와 그녀가 이제는 중년의 학부모로 ,

어린아이이던 우리 의 두 아이가 어엿한 청년이 된 이제야 만났다.


구미코와 난 오랜만의 해후인지라 , 잠시 여자들만의 시간도 갖고,

이츠카 군의 간장게장을 발라 먹는 모습에 흐뭇한 웃음도 지어보고 ,

하루카 군의 넉살 좋은 용맹함에 감탄하고, (한국어도 못하면서 말을 거는 용맹함에)


전쟁기념관에서 두 아이들이 물었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부분을 정확히 알고 싶다고....

해맑은 표정으로 말이다..

그때 느꼈다

앞으로의 젊은이들의 미래가 희망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수원 화성 성곽을 같이 거닐고 ,

일본 시절의 추억들을 다시 나누며 ,

그렇게 2박 3일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고마 짱이 말했다.

센다이 시절 은미 상의 밥이 참 맛있었다고..


황혼이 가득 물들던 성곽길에서 그의 그 한마디는

나에겐 최고의 행복감을 맛보게 해 주었다.


우린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며

또다시 만날 시간들을 기대하기로....

이번 만남에서 딱 한 가지 아쉬움은 큰 아이가 급한 회사 일로 예정했던 만남을 못했다는..


무등을 태워준 아저씨와 그 자녀들과의 더 멋진 만남은 또 다른 기대의 시간으로 남기기로..


그와 그녀 ,

옆지기의 학교로 인한 인연의 시작이었지만 ,

그 인연의 연결고리는 결국 센다이 시절의 우리 집 밥상이었다는 사실..

그것이 내겐 어쩌면 내 인생에서의 커다란 열매 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이츠카군, 하루카 군, 그리고 내 두 자녀들의 모습들로 이어질 귀한 인연에

감사와 행복을 가득 담아본다.


그렇다

나에게 일본이란

가족과 같은 소중한 사람들의 존재

그것이다.

beauty_20191227133744.jpg
20191228_101050.jpg
20191228_120238.jpg
20191228_161603.jpg
20191228_163913.jpg
20191228_164753.jpg
beauty_20191228165516.jpg
20191228_181141.jpg
beauty_20191228165307.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