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ily Jun 09. 2020

여행 이야기

밀양에서의 에피소드 그 뒷 이야기

코로나가 창궐하는 지금 , 공포에 떨던 모든 이들이 이제는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 누구나 할 것 없이...

나 역시도...


한 달에 한 번씩 내려가는 사택, 그 주변을 잠시 잠시 이동을 하곤 하는데 , 지난달 맘먹고 가보려던 밀양의 위양지는 앞 글에서 이야기했듯 근처에서 포기했던 사연

그렇게 묻어버린 그곳을 , 그 며칠 뒤에 근사하게 방문하게 됐던 추억을 끄적여 보려 한다.

어느 곳을 가던지 그곳의 역사를 한 번쯤은 돌아 살펴볼 필요가 있기에 지루하더라도 사진 아래로 남겨둘 역사적인 설명을 꼭 읽어보시길 권해본다.

사택 근처에 사시는 존경하는 큰언니 같은 분과 더불어 한적한 평일에 다시 찾은 곳 , 혜산 서원과 위양지.

무슨 말이 필요하려나..

장관 같은 풍경과 고택 속에서  그냥 천진난만한 소녀 둘로 잠시 돌아가버렸었다.

아무도 없는 고즈넉한 고택 담벼락에서 소녀 둘이 돌맹이를 쌓고 올라서서 몸부림을 쳐 버렸다 .
햇살이 찬란햇고 더불어 이팝나무도 빛났던 오월의 어 느 날
정자에서 바라 본 연못 위양지.. 황홀했다

젊은이들의 모습에 애처로우면서도  흐뭇하기도( 이 현실에서)...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소녀로 돌아간 중년의 여인 둘. , 현실에선 맡은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을 뿐...


......

밀양 위량못(密陽 位良못)은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에 있는 저수지이다. 양아 제라 고도한다.

경남 밀양에 있는 위량못은 통일신라와 고려 이래로 농사를 짓기 위해 이용되었던 작은 연못이다.
연못 주변에는 화악산·운주암·퇴로 못이 마련되어 있어, 인위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밀양 혜산서원(密陽 惠山書院)은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이다.

산외면 다죽리 죽서(竹西) 마을에 세거 하는 일직 손 씨의 5현(五賢)을 받드는 서원으로 본래는 영조 29년(1753년)에 창건한 격재 손조서(格齋 孫肇瑞:1412-?)의 서산서원(西山書院)이 있던 자리이다. 격재는 조선 초기 단종의 왕위를 찬탈(簒奪)한 세조의 횡포에 분개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충의(忠義)와 탁 절(卓節)로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오직 도학에만 전념한 학자인데, 후일에 사림들의 추앙을 받아 이곳에 서원을 세웠으나 고종 5년(1868년)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훼철(毁撤)된 후 그 집을 "서산 고택(西山古宅)" 또는 "철 운재(徹雲齋)"로 편액 하였다.
1971년 서원의 경역을 확장 정비하고 각지에 분산되었던 일직 손 씨 명현(名賢) 다섯 분의 서원 즉, 정평 손홍량(靖平 孫洪亮:1287-1379)의 안동 타양 서원(安東 陀陽書院), 격재 손조서(格齋 孫肇瑞:1412-?)의 밀양 서산서원(密陽 西山書院), 모당 손처눌(慕堂 孫處訥:1553-1634)의 대구 청호 서원(大邱 靑湖書院), 문 탄 손 린(聞灘 孫遴:1566-1628)의 대구 봉산 서원(大邱 鳳山書院), 륜 암 손우남(綸菴 孫宇男:1564-1623)의 영천 입암서원(永川 立巖書院) 등을 후손들의 세거지인 이곳으로 옮겨 복설(復設)하고 혜산서원(惠山書院)이라 편액 중건한 것이다. 서원의 규모는 1,300여 평의 대지 위에 사우(祠宇), 강당(講堂), 동재(東齋), 서재(西齋), 상례 문(尙禮門), 신문(神門), 중문(中門), 전사당(典祀堂), 신도비각(神道碑閣), 다원 서당(茶院書堂), 이이정(怡怡亭), 고사(庫舍), 대문(大門)등 13동의 건물이 경역에 자리 잡고 있다.
참고 :위키백과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