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ily Jun 24. 2020

여행 이야기

유천길 45번지

우주를 품은 나무. 흙. 돌의 전시를 보고 난 뒤 청도로 , 다시 밀양으로 향하던 길에 아스라한 옛 마을을 잠시 거닐었다.

유천길 45번지...

그 옛날 그러니까 내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시대의 그리고 나의 아주 어릴 적의 기억이 공존하는 그런 마을 말이다.

정미소 ( 내 기억으론 방앗간 )부터 시작하여....


살구꽃 핀 마을’





       이호우 시인의 시조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草堂)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그러다 발견한 폐허가 되어버린 (차마 폐허의 장면은 찍질 못했다 )

시조시인 이호우 님과 그 여동생 이영도 님의 생가...

실은 당시엔 두 분에 대해 잘 몰랐다.

그저 멋들어졌었을 듯한 마당이 잡초로 무성하며 , 곧 쓰러질 듯한 집과 두 분에 관한 이름뿐...

알지도 못하는 두 분이었지만 방치된 그 살황에 절로 마음이 무거웠던...

이호우 시인의 시조시 ( 그는 현대적 감성으로 시조시를 재 탄생시켰다 )


달밤(이호우)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 엔지 그리운 밤 지향 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보니
돌아올 기약 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趙雄傳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 버진 율 지으시며 달이 밝았더이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뛰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이영도는 같은 시조시인 이호우의
누이동생으로 통영여중의 가사 교사로 부임하면서
같은 시기에 국어 교사가 된 청마 유치환과 플라토닉 러브를
하게 된다  청마가 정운에게 보냈던 시, 중 하나


      -그리움-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님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청마의 그리움이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드는 것이 있다면 정운의
그리움에는 물같이 까딱 않다가 조금씩 밀려 애절하게 스며든다
      -그리움-           이영도
생각을 멀리 하면 잊을 수도 있다는데
고된 살음에 잊었는가 하다가도
가다가 월컥 한 가슴 밀고 드는 그리움

........


아련한 추억 속의 골목길에 슬픔이 더해졌던 뜨겁던 6월 어느 날의 아주 짧았던 시간 여행을 올려본다


곧 쓰러질 것 같던 생가는 찍질 않았다.아니 더 정확히는 못찍었다

유난히 눈에 밟힌 그 시절의 요강 이 덩그마니...

 하늘과 구름과 나무와 이런저런 꽃들만이 그 시절을 대변해주던 작은 골목 안을 하염없이 걸었던 잠시의 시간이었다

.........

두 분에 관한 설명은 검색을 통해  올려두어 보련다

이호우 시조시인

향리의 의명 학당(義明學堂)을 거쳐 밀양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4년 경성 제1 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28년 신경쇠약 증세로 낙향하였다.
1929년 일본 도쿄 예술대학에 유학하였으나 신경쇠약 증세 재발과 위장병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다음 해 귀국하였다.
1934년에는 김해(金海) 김 씨 김순남(金順南)과 혼인하였다.
광복 후 『대구일보』 편집과 경영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1952년 대구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지냈고, 1956년에는 대구매일신문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을 지냈다.
한편으로는 시작 활동을 하여 지방문화 창달에 공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시작 활동은
1939년『동아일보』 투고란에 「낙엽(落葉)」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으며,
1940년 『문장(文章)』
6·7호 합병호에 시조 「달밤」이 이병기(李秉岐)의 추천을 받음으로써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작품집으로는 첫 시조집 『이호우 시조집(爾豪愚時調集)』이
1955년 영웅 출판사(英雄出版社)에서 간행되었다. 이어 누이동생 영도와 함께 낸 시조집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중의 1권인 『휴화산(休火山)』
(1968)을 발간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이것은 『이호우 시조집』
이후의 작품들을 모아 엮은 시조집이다.

그의 시조관은 『이호우 시조집』 후기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는 여기서 한 민족, 한 국가에는 반드시 그 민족의 호흡인 국민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시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국민시는 간결한 형(型)과 서민적이고
주변적이며 평명(平明)한 내용을 갖추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작품에 잘 반영되어 있다.

추천 작품 「달밤」에는 이러한 점이 잘 나타나고 있는데 “아무 억지도, 꾸밈도, 구김도 없다.
”는 선자(選者)의 말과도 같이 범상적인 제재를 선택하여 평이하게 쓴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범상적 제재와 평이성이 초기 시조의 세계라면, 후기 시조 『휴화산』의 시편들은
인간 욕정의 승화와 안주하는 경지를 보인 점이 특색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고전적 시조를 현대 감각이나 생활 정서로 전환시켜 독특한 시적 경지를
개척한 것이 시조 시단에 남긴 공적이라 할 수 있다. 편저로 『고금 시조 정해(古今時調精解)』가 있다.
고전적인 시조를 가람 이병기 선생이나 노산 이은상 같은 분들이 근현대적인 기법과 감각으로
재생하고 다리를 놓았다면 이호우 시인은 그것을 보다 현대적인 정서와 감성으로 내면화하고
풀어내는 데 크게 기여하신 대표적 시조시인이다.

그에 이르러 시조가 현대시의 서정과 범주를 포괄하면서도 고유의 운율과 그 격조를 보존,
내용과 정서적인 깊이와 표현의 현대성을 아우르는 기름지고 풍성한 차원으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평생을 청도 대구지역의 지방에서만 활동하셨지만 그의 업적과 문학적 성취는
이와 같이 중앙에서 주역으로 활동한 시인들의 역량과 위치를 훌쩍 뛰어넘는
문학사적 길목을 점유한다. 가람 이병기 이후의 현대시조는 바로 이호우인 것이다.


정운 이영도(경북 청도, 1916~1976)는 같은 시조시인 이호우의
누이동생으로 20대 초반 결혼하여 딸을 하나 얻은 후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 후 경남 통영여중의 가사 교사로 부임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