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이 하이스쿨
아무런 준비도 못한 채 이삿짐 속의 막내
미시간의 내 소중한 친구이며 여장부인 김 사장의 안내로 같이 간 노바이 하이스쿨의 첫 만남.
한국으로 치자면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를 등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막내의 한국 성적표는 음.. 말로 표현을 하자면 들쑥날쑥 그 자체였고.
크레딧으로 교환할 성적을 맞추어보려니 준비를 하고 간 유학생들과는 입장이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되었던 기억이다.
마침 미시간의 학교 법상 3,4월생은 일 년을 늦출 수 없는 시점과 맞아 떨어져 버린 막내의 학교 생활을 시작부터 전쟁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 친구의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난다.
너 기도 많이 해야겠다..
지금은 웃으며 이 글을 적지만.. 그 당시에는 참으로 머릿속이 하얗던 기억.
그렇다고 아이를 나무랄 수 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 준비를 시킬 시간 조차 예상 못했던 이사 있기에.
또 한 가지는 사내 두 놈을 키우다 터득한 것은.
움직이는 놈을 가만히 앉아 두기엔 나란 엄마는 실은 자격 부족이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내 어머니가 했던 식이 아닌 반대의 방법으로 아이를 키우려던 내 고집 때문이었는지.
나 모범생 중의 모범생이던 기억, 국민학교 시절 다른 아들은 놀던 시간에 난 엄마 옆에서 문제지 5가지를 풀어야 했던 기억에, 난 아이들을 가끔 방치하기도 했었다.
이른 아침 등교길 역시 눈이 많고 추운 미시간에서의 또 다른 복병이었다.
큰 아이와 달리 아침 잠이 많던 막내에게..
첫 반년은 그나마 집이 바로 학교 앞이어서 다행이기도 했었지만.
미시간의 고등학교는 수업이 7시 20에 시작됐고, 늦어도 3시 전에는 모든 학교 수업이 끝났다,
다른 주와는 달리 16세부터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시스템이라서 많은 고등학생들이 차를 운전하는 상황이었다.
아침 잠결에 운전하는 많은 학생들 덕에 사고의 확률도 그만큼 많던 곳이기도 했다.
학교의 건물은 엄청나게 넓어서 처음 수업을 찾아다니기에 아주 애를 많이 써야 했던 막내였다.
학교 옆의 새로 신축된 노바이 도서관을 나는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도, 또 내 튜터샘과의 수업 장소로도 많이 활용했던 기억이다.
반 년만에 나중에 합류한 대학생이던 큰 아이가 노바이 스쿨을 견학하고 난 뒤의 첫 마디는
본인도 다시 고등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것일 만큼 미국의 고등학교는 우리의 아이들의 관점에서도 희망의 학교 있지도 모른다.
각자에게 맞는 수업 선택. 선행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한 테스트들, 또한 한 번의 실수를 두세 번에 나누어 만회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격려하는 시스템 , 아마 이것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유학을 떠나는 구나 하는 생각을 나 역시 직접 그 곳의 고등학교의 학부모가 되고서야 느낄 수 있었다.
SAT 공부를 하지 않고도 ACT만으로도 충분히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유학을 보내는 학부모들 중에 모르는 분들이 많다.
아마도 유학알 담당하는 학원들에서는 이 방법은 권장하지 않을지 모른다.
왜? 내가 본 사립학교로 유학 온 한국 학생들 중엔 화상으로 한국 강사들에게 SAT를 수강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경제적 여유가 완벽해서 사립대를 보낼 경우라면 분명 SAT가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충분히 ACT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막내가 입증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조언을 수 있다.
3번의 ACT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로 대학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에겐 선택의 기회도 많아지는 것이다
이래서 다들 기러기가족을 선호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해 보기도 했다.
준비 없이 간 이사, 준비 없이 학교엘 전학했지만
카운슬러와 상담받아가면서 막내는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고 또 노바이 스쿨의 축구팀에 합류하면서 또한 자존감과 자신감과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노바이 하이스쿨은 막내에게는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준 뜻깊은 모교가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