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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Oct 10. 2020

여행 이야기

청농원과의 인연

거 슬러거 슬러

일본 센다이에서 귀국한 이듬해,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시절,

결혼 후 오 년은 광양으로 , 오 년은 다시 일본 센다이로 떠돌다 보니, 서울을 근 십 년을 넘게 거주 경험이 사라져 버렸었다.

물론 , 시댁과 친정과 내 삶의 터전이던 곳에서의 인연들은 계속되었겠지만 소위 아이들을 둔 학부모로서 , 특히 그 엄마들의 모임이 서울에 하나도 없던 시기가 존재한다.

아이들의 유치원 시절부터 결성되는 모임과 초등학교 입학시기의 모임 말이다.


큰아이가 만 다섯 살에 , 막내가 기껏 두 살 시절에 일본으로 떠나 버린 탓에 나에게 아이들의 학부모들과 접할 기회는 오히려 센다이에서였고  , 지음도 라인과 인터넷전화 등으로 소중한 그곳의 소위 말하는 두 사내아이의 친구들의 엄마들과 소통하고 있다.


신혼을 광양에서 시작했고 , 시댁살이를 하고 일본 생활로 이어진 우리 가족이 다시 서울로 입성을 할 것이라곤 내 예상 속에서 없었다. 기껏해야 대전이 최북단의 새로운 터전이 되려나? 하던 마음은 있었지만..( 물론 맏며느리로서 시조부모님, 시부모님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회피한 것이 아니다..)


아무튼지 서론이 길어졌다.

그렇게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 한 우리 가족은 어쩌다 영국으로 갈 뻔하다 서둘러 귀국이란 걸 하게 됐었고, 어쩌다 서울 한복판으로 이사를 하게 됐었다.


콩당콩당 책을 거꾸로 들고 한글을 쳐다보던 막내는 94년 생이었다. 귀국해 보니 소위 그 영어 유치원 탄생의 1기생들과 어깨를 마주해야 는 사태 속에도 난 꿋꿋하게 집 앞의 걸어서 가는 일 번 유치원에 입학시켰었고 , 그렇게  일 년 뒤 집 옆 초등학교를 가게 됐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다.


난 사내아이만 둘의 엄마다.

당시 초등학생을 둔 일하던 엄마의 조건에는  학교의 전달 사항을 체크해 줄 같은 반의 여학생과 그 엄마가 필요조건이었다.


내가 살 던 아파트의 같은 층 옆 옆 집에 , 알고 보니 막내와 같은 반의 여자 아이가 살고 있었고 , 아주 똑 부러지는 애 엄마의 인상을 접했던 어느 날부터..

그렇게 이어진  **네와의 인연 이야기이다.

오늘 서술하는 내용은 그렇게 이어진 **엄마와 나의 인연에서 비롯된 어느새 근 이십여 년이 되어가는 소중한...


**네 친가는 전북 고창이다.

그곳에 노모가 계셨고 ,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고택의 이야기를 들은 지도 그러니까 이십여 년이 돼가는 것이다.

그 고택을 , **네 할머니가 요양병원으로 옮기시고도 몇 년 뒤인 어제야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서술하고자 한 것이다.


광양댁이던 나여서 , 또 내 어린 시절 나의 외가인 충남 당진과 나의 친가인 저 남쪽 신안군 지도면을 다녔던 경험에 의해서인지 낯설지 않은 남쪽..

지금은 어쩌다 또 경상남도에 사택이 생겨버린지도 육칠 년이 넘어버려서인지 사실 지방은 내게 아주 친밀하다.


다시 시작한 일로 바쁘기도 했고 , 이 코로나의 시기에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옆지기와 전주에서 만나  한걸음에 달려 간  그곳 청농원...


세 해 전 **엄마를 따라 청농원의 상표 로고와 기념 타월 등을 만들러 같이 다닌 탓에도 아주  친밀한 그곳엘 갔다.


부러 연휴에 내려간다던 그녀에게 말도 없이 깜짝 이벤트로도 딱이겠다 싶었고.


워낙 사진으로 , 블로그로 친숙하기도 했고 , 언제고 같이 오자고 약속했던 곳이기에 , 또 **할머님과도 뵈었던 이웃이기에 , 또 내가 소중히 아끼는 인연의 그녀가 있기에 친정에라도 가는 기분이기도 했던 듯하다.


아무튼지 갑작스레 이번 중추절부터 그곳의 핑크뮬리 밭이 인스타를 통해 확산이 되어 버려서 , 일손이 부족해 핑크 아이스크림을 팔러 주말마다 내려가게 된 그녀를 본 지도 꽤 오래된지라...


멋들어지게 가득한 핑크 뮬리와 고택 ,

입구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장미와 배추 밭 ,

고택 뒤로 가득한 라벤다 밭 하며 ,

또한 그 고택 속의 삶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내겐

눈에 보이지 않는 소소함까지 내 눈에 가득 들어왔고 담아버렸다.


잠시의 해후에 반가움과 함께 ( 소소한 일상은 톡인) 전화로 주고받고 자녀들의 일등은 서로 의논하는 가족 같은 사이라서 )..


그렇게 그곳을 가버렸던 어제를 적어본다 .

그 넓은 마당에 , 초등학교 일 학년 시절의 94년생 꼬마들이 뛰노는것만 같았다.

멀리 부산부터 전주로 , 다시 고창끝까지 운전해준 옆지기와

그녀와의 사진은 생략하고 어느 추울 겨울날

저 고택에서 도란도란 군고구마도 만들어가며 우리의 지난 시절과 아이들의 이야기로  꽃 피울 소중한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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