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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Feb 19. 2016

에밀리의 일본어  식탁

내가 바라는 소셜 쿠킹이란

어느 사이 해로 3년 채로 접어드는 나의 소셜 쿠킹..

에밀리의 일본어 식탁(집밥)이다.

송년 모임 뒤로 1,2월은 방학기간이기도 하고 , 나의 재 정비 기간이기도 하지만 왠지 올 해는 나의 게으름이 길어지는 현상이다.

어제 시간이 있어서 동주라는 영화를 혼자 보았다.

윤동주 시인의 옥살이가 진행되면서 펼쳐지는 어린 시절부터의 그와 그의 사촌의 삶.

즉 일본 점령기의 창씨개명과 젊은이들의 나라를 위한 혁명 내용 등이 흑백  필름으로 돌려지는 이야기였다.

윤동주 시인은 마지막 즈음에 후회한다,

왜 난 더 적극적으로 일본에 대항하는 일을 시라는 작업으로 보내버린 걸까 하면서 말이다.

왜 난 소박하게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었을까, 그의 사촌처럼 적극적으로 임시정부의 일부터  뛰어들지 못하고,,,

그들은 후쿠시마의 교도소에서 알지도 모르는 살인무기의 주사의 새 채 실험용으로 그렇게 해방을 앞두고 죽어가는 모습들...

역사적으로 일본은 독일을 모방하며 아시아의 해방을 외쳐댄다 영화 내내 말이다.


베를린의 통일, 지금의 독일. 그리고 유럽.

그리고 지금의 일본 , 중국, 미국,,,

얼마 전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등,,,

있어서는 안될  제3차 대전은 지금의 우리의 내면 어디에 선가는 벌써 바랄 한지도 모른다..

이런 역사적 이야기와 지금의 현실 속에서 내가 하는 소셜 쿠킹은 제목부터가 일본어 식탁이다..

누군가는 묻는다.

왜?

하필이면 일본?

츠나미로 방사선으로 물든 그들의 재료를 사용하느냐?

요리 교실의 딸들의 엄마 들은 더 예민했다.


나 에밀리에게 이 소셜 쿠킹의 의미와 목적은 세 가지이다.

하나는 건강한 음식을 나누자

하나는 내가 살던 지금도 내 아이들의 은사님들과 내가 가족같이 여기는 분들이 계시는 교회와 내 지인들과 내 친구들인 그들과 나눴던 그 소박한 마음을 나누자

하나는 음식을 만든다는 거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 말고 스피디하게, 간편하게 변형해보자


난 음악도였다.

그다음엔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가르치던 분야를 음악, 언어, 교육, 음식에서 내가 직접 현장에서의 쉐프로 전환해 보기도 했던 지금은 음식에만 집중하고  있는....


50 하고 세 번째 해를 맞았다.

살면서 20세부터 랫슨을 하며 일을 시작했었다.

80년대 학번들에게 과외나 랫슨이나 알바는 삶의 도구였다.. 지금의 명품 타령이 아니란 말이다.

길어진 수명에 걸맞게 앞으로의 시간들을 내가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특히나 나 같은 들들 이 엄마는 말이다.

세상은 냉정하다.

그래서 내겐 또 다른 열정을 품을 목표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어 식탁을 시작하며 밴드를 시작했었다.

무수히 많은 밴드들이 수익을 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난?

이 콘텐츠를 우연히 만들게 된  것처럼  소소한 나눔을 하고 싶다.

현실은 때론 이익 추구가 먼저이다.

50을 넘긴 내가 그것을 모르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이 즐거움으로 다가와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2016년의 일본어 집밥의 행보가 그래서 누구보다 나 자신이 더 궁금해진다.

도트무늬  일명 땡땡이는 영원한 연인이 아닐까?

2015년 초의 일본 방문시 사온 책을 끄적이다가..

오늘의 글들이 날시가 흐린 탓인가? 많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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