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갈 기운

- 쉴 만한 물가 -

by 고아함

세상사를 시원스럽게 풀어내지 못해서 마음이 시름에 잠긴다. 바람결에 사각이는 나뭇잎 소리와 그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에도 가슴이 시린 것은 상심한 마음 탓이다.


‘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인생의 짐들이 힘겹게 느껴지고 타고난 숙명이 곤고하게 느껴질 때 들판을 지나 물가로 산책을 떠난다.


바람 한 줄기가 몸을 휘감고 사라진다. 어미 오리가 헤엄쳐 나아가며 물자리에 포물선을 그린다. 뒤따르는 여섯 마리의 아기 오리들 곁에도 작은 원들이 그려졌다 퍼지고 커다란 동그라미 물결이 생긴다.


맑은 하늘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떠간다. 물속에 그 하늘이 비친다. 수련은 군데군데 화사한 분홍빛 꽃을 피워 도란도란 떠 있고 연두색과 초록의 수초들도 한가득 울타리를 둘렀다.

“꽉 꽉 꽉 꽉꽉….” 어미 오리가 물가의 고요를 깬다. 오리 가족들은 물갈퀴로 속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고 동동 떠다니며 노닌다. 알록달록 잉어들이 헤엄을 치다 수련 사이로 살짝 숨기도 하고, 잠자리는 먼 곳에서 날아와 투명 날개를 펴고 수초에 잠시 앉아 쉬어 가기도 한다.


풍덩! 어미 오리가 꼬랑지를 물 위로 치켜세우며 자맥질을 한다. 앙증맞은 귀여운 아기 오리들도 어미를 따라 한다. 그러다 불쑥 물 위로 솟구쳐 뭉툭한 부리로 잘근잘근…….

어디선가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물가의 수양버들이 살랑거린다. 인자한 할아버지의 늙지 않은 긴 수염처럼 치렁치렁, 벤치에 연초록 빛깔의 그늘이 만들어졌다.


벤치에 앉았다. 물과 바람, 하늘 그리고 오리가족, 수초, 수목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평화롭다. 마음의 시름이 사라지고 자연의 평화가 스며온다.


‘너무 걱정 말라, 어떻게든 또 살아갈 수 있게 되리라, 근심 걱정도 한순간, 물 따라 바람 따라 세월 따라 살아가다 보면 다 흘러가는 것이니라.’ 내면이 소리한다.

나무다리를 건너 물 한가운데 정자 마루로 향한다. 연꽃들이 커다란 잎을 돋우고 무리 지어 피어 있다. 그 연꽃을 헤치고 자라 한 마리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그러다 이내 몸을 드러내 천진한 눈망울로 나를 맞이한다.


목덜미가 연녹색으로 줄무늬 져 파충류 뱀이 한순간 연상되지만 자라는 몸새가 귀엽다. 오래 머물다 가라는 듯 주위를 맴돌며 순진한 눈빛을 보내온다. 나 역시 자라가 좋아 사랑의 눈길을 보낸다.


하늘과 바람을 품고 동식물의 생명을 잉태하며 고요히 고여 있거나 흘러가는 물, 그 물가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다. 마음이 심란할 때, 슬플 때, 아플 때, 삶이 고단하게 느껴질 때, 조용히 물을 응시한다. 잔잔함과 흘러가는 모습으로 마음에 편안함을 주고 인생의 흐름을 생각하게 한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살아가지만 사람에게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다. 모두 서로 피곤하고 사는 것이 버거우니까.


물가에서 자연을 보며 평안을 얻는다.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품으라. 욕심과 허망한 집착을 버리고 조급함, 원망, 미움도 다 흘려보내라. 차분하고 안정된 심령에 다시 살아갈 기운이 스민다.

**커버/하 사진-고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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