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꿈꾸고 바라며 욕망하는 삶의 최대치는 어느 정도일까? 모든 만물을 자신의 지배아래 두는 최고의 권력, 모든 사람이 나를 알고 부러워 해주는 명예, 써도 써도 없어지지 않는 돈, 싫은 감정과 고통도 없는 매순간 기분 좋고 즐거운 일, 그리고 늙지도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사는 것. 이룰 수 있을까?
어떻게 세상 만물과 내가 존재하는가? 성경에는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
사람이 창조하지 않은 우주와 만물은 눈에 분명히 보이고 있고, 내가 지닌 내 몸도 내가 정확히 모른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코스모스』에서 말했다.
“시계가 있으면 그 시계를 만든 자가 분명히 있게 마련이다. 온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우는 생명 현상의 다양성 그리고 그 생명 현상들 배후에 복잡 미묘함을 대할 때마다 사람들은 깊은 외경의 감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설계자가 모든 생물을 정성들여 만들었다는 생각은 모든 자연현상에 의미와 질서를 부여했고 인간의 존재와 의미를 찾아 주었다.”라고…….
『종의 기원』에서 다윈도 생물은 어떤 물질이 진화하여 발현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진화하기 이전의 그 '어떤 물질'은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
나의 머리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도, 알 수도 없는 영원한 수수께끼 - 신비다.
그럼에도 사람이 신비인 신을 찾고, 마음을 향하는 때는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난관에서 절망으로 고통스러울 때, 사는 것이 허무하고 공허하여 살아가는 소망이 없을 때, 죽음에 대한 공포가 두렵게 엄습할 때다.
올바른 삶, 가치 있는 삶, 행복한 삶, 인생 멘토의 조언에 삶의 정답을 찾아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그 조언이 내게 다 정답일까? 내 인생은 멘토의 삶과 동일하지 않다. 살아가는 마음가짐과 자세, 방식에 적용해보다 작심삼일. 참조는 할 수 있으나 짜 맞춰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타고난 성정(성질과 심정. 타고난 본성), 기질, 처한 상황이 멘토의 인생철학과 교훈, 지혜보다 훨씬 더 강력하기 때문 아닐까?
내가 나답게 산다는 것, 생각만 해도 현상의 시류에 현혹되지 않고 휘둘리지 않아 사는 용기와 자유를 느낀다. 그러나 진정 나답게 살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뒷받침되고 있는가? 나를 둘러싼 관계, 처한 상황, 사회의 시스템, 영원한 삶도 없는 유한한 생명체가 과연 나답게 살 수 있을까? ‘흔들리며 사는 게 인생’이란 정의가 진솔히 와 닿으면서도, 나답게 살고 싶은 것이 꿈이고 희망이다.
산다는 것은 ‘용기’와 ‘희망’을 품는 일. 삶의 질곡 앞에 담대해질 수 있다면 사는 일이 힘겨워도 살 만 한 일. 슬퍼도 살고, 어이없어도 살고, 분노가 끓어도 살고, 무료해도 사는 것. 사람이 사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다. 그 행복을 위해 삶에 여유를 갖는 건 멈춤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한 준비다.
사랑하고 사랑 받을 때, 인생을 살아갈 의욕과 소망을 갖는다.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의미를 지닌다. 사람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에 한정된 능력과 선택의 자유의지만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 믿고 의지할 대상은 아니나 이해하며 함께 살아야 할 공동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