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쭉길쭉 뻗은 나무들이 늘어선 산길을 거닐었다. 해는 서쪽 하늘로 비껴가고 있었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언뜻언뜻 햇살이 반짝였다. 앙상한 가지에 매달린 메마른 나뭇잎들은 살랑대는 바람에 부석거렸다.
“호로롱, 짹짹” 새들의 지저귐이 맑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들숨으로 청량한 공기를 들이셨다. 그동안 살며 머릿속을 꽉 채웠던 수많은 생각들이 빠져나가고 아주 단순해지는 빔의 여유가 밀려들었다.
“후루룩 바스락” - 청설모다. 산책길에 가끔 행운처럼 만나는 반가운 동물, 짙은 갈색 털에 복슬복슬한 꼬리를 봉긋 세우고, 잘려나간 나무 그루터기에 서서 앞 두 발로 잡은 먹이를 참 맛있게 먹는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너무 귀여워 넋 놓고 바라보는데 내 기척을 눈치챘는지 쭉 뻗은 높다란 나무를 쏜살같이 타고 후루루 달아난다. 이 나무 저 나무 잔가지를 훨훨 타며 훌훌 뛰어 날더니 나를 멀찍이 높다란 나무 아래로 떨구어 놓고, 못다 먹은 먹이를 또다시 어디선가 꺼내 냠냠 먹는다.
참 자유롭고 단순하다. 숲에서 마음껏 노닐다 배고프면 먹이 주워 맛나게 먹고 나무를 친구 삼아 가지 타며 커다란 나무도 자유자재로 씽씽 오르락내리락. ‘청설모는 참 태평하고 즐겁구나.’ 순간 부럽기까지 했다. 청설모의 삶이 나보다 낫다.
나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지만 언제 저렇듯 단순하고 자유롭게 살아 본 적이 있었던가. 무한 경쟁사회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의식을 곧추 세우고, 결코 초라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았다. 또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과 규범을 따라 방만한 자유가 아닌 행동의 절제를 견지했다.
열정 있는 사람은 말한다. 꿈, 비전을 갖고 자신이 목표한 바를 향해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라고. 바람직한 삶의 태도다. 한 번뿐인 인생이므로 성실히, 열심히 사는 게 당연히 사람의 자세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목표를 성취하고 나면 그것으로 만족할까? 하나를 성취한 기쁨과 뿌듯함은 사라지고 또다시 일렁이는 다른 욕망에 끌려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궁극적 자유와 마음의 평안은 저 멀리…….
현자는 말했다.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고 무소유를 추구하며 간소하고 단순하게 살라고. 그것이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라고. 그러나 사람의 속성상 그렇게 사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자신만의 삶에 대한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심연의 물음에 결단이 되는 삶의 방향 설정은 혼돈과 무의미를 벗어나게 해 준다.
삶의 방향이나 기준점은 개인이 처한 상황과 성향에 따라 다르다. 나는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것을 좋아하고 암울한 것보다 명쾌한 것을 좋아하므로 ‘단순하고 명쾌하게 살기’로 했다.
그렇게 살기 위해 첫째, 자신의 감정에 솔직 하려고 한다.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다고 분명히 밝혀 오해와 착각이 일지 않게 해야겠다. 그러면 일이나 사람과의 관계가 선명해지고 갈등도 줄 것 같다.
둘째, 돈에 집착하지 않으려 한다. 생계유지와 생활에 큰 불편이 없다면 많은 돈을 소유하려고 애쓰지 말아야겠다. 화려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부러워하며 돈만이 인생을 행복하게 해 준다고 생각하기 쉬웠지만, 돈을 많이 소유하고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을 보니 꼭 그렇지도 않다는 걸 느낀다.
누구에게나 생활의 풍요는 바람이고 희망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여유와 안락감을 주는 그 풍요를 누리기 위해, 일생을 오로지 돈에만 관심을 두어 집착하고 돈만을 좇는다면 다른 소중한 것들에는 무관심하게 되지 않을까. 사랑, 정직, 신의, 성실과 같은 선한 가치가 돈에 함몰되어 가볍게 여겨지지 않을까.
사람에게 있어 일만 악의 뿌리가 돈에 있다고 한 성구도 돈에 대한 집착을 경계한다.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돈과 악의 깊은 연결고리를 간파하며 경각심을 갖게 한다.
셋째, 이일 저일 다하려 하지 말고 좋아하는 일 한 가지에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러면 결코 타인에게 업신여김을 받지도, 빼앗기지도 않으며 존재감 있게 사회에 공헌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