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이해

by 고아함

평상시 그분은 참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이었다. 마음이 평화롭고, 사람을 사랑하여 기분 좋게 방긋방긋 웃을 때가 많았다. 그러다 무슨 일로 심기가 불편해지면, 그 마음 드러나는 표정과 언행이 얼음같이 냉정하며 칼끝처럼 날카로웠다.

또 다른 분은 섬세하고 자상하며 호탕하게 웃어 사람을 기분 좋게 했다. 그러다 마음 상하면 공격적이고 사납게 변했다.


이렇듯 사람이 보여주는 부드러움과 따뜻함, 차가움과 포악함을 어떻게 이해하며 살아야 할까?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마음과, 괴롭고 상한 마음으로 느껴지는 속성을 표출하기도 하고 대하기도 하며 사는 우리! 그 양면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까?

사람이 갖는 선한 속성은 사랑, 온유, 정직, 절제, 인내, 만족, 안정, 겸손, 친절, 자상함, 인정으로 나타나고 악한 속성은 미움, 냉혹, 과격, 폭력, 독함, 잔인, 속임, 교활, 방종, 조급, 불만, 교만, 시기, 질투, 무정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선한 속성을 보이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악한 속성을 감지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느끼며 판단하고 산다.

그런데 이 세상에 선한 속성만을 지니고 완벽하게 옳은 행동만을 하며 사는 사람이 있을까? 티끌만큼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 오직 다른 사람에게 유익만을 끼치는 사람, 사람들의 험담에 결코 오르내리지도 않는 사람. 스스로 자신을 선하다고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사람, 그래서 흠 하나 잡을 것 없고 존경심만 절로 우러나는 사람.

살면서 우리는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많은 사람을 상대하며 살게 된다. 그런 가운데 취향이나 성격이 비슷해 마음이 통하는 사람,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좋은 면이 있어 신선함과 부러움을 느끼는 사람, 어려움을 잘 도와주는 사람, 마음이 편한 사람, 불편한 사람 등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경험한다. 편하고 좋은 느낌의 사람을 만나면 인생이 행복한 것 같고, 그와 정반대의 사람을 만나면 지지리도 인복이 없는 듯 불행하다.

그런데 이 세상에 완전히 좋은 사람, 완벽하게 나쁜 사람이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선과 악의 양면성을 지니고 세상에 태어났다. 그 근원은 성경을 통해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에덴동산에 살았던 인류의 시조, 아담과 이브는 뱀의 간계에 속아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손인 사람은 자연히 내면에 선악이 들어왔고 무엇이 선이고 악인 지를 분별하게 된 것 아닌가.

이런 분별력으로 자유롭게 선악을 선택하며 감정을 표출하고 살아간다.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이기에 사람의 능력과 하는 모든 일에는 한계가 있고 마음도 상황 따라 선하게, 악하게 변할 수 있다.

선과 악의 두 가지 가치가 사람의 마음에 양립함으로써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는 건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변했다고 날 선 감정을 세우며 비난하고, 분노하며 미움의 고통에 빠진다면 자신만 괴로운 것 아닐까?

사람은 공존을 위해 서로 친절과 사랑을 베풀며 살 대상이지 완전한 존재가 아니므로 믿거나 의지할 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쉽게 사람과의 관계에서 친밀하고 내게 도움을 주면 인연이고, 마음에 불쾌함과 상처, 나아가 해악을 주면 악연이라 단정 짓는다.

그러면서 인연보다 악연인 사람을 더 기억하고 괴로워하며 때로는 선한 감정으로 주고받았을 좋은 일마저 안 좋았던 일로 묻어버린다. 그리고 소처럼 잘근잘근 되새김하며 자꾸 떠올린다. 그러니 좀처럼 자신을 사랑하되 불유쾌한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자신을 비롯한 모두가 부족한 면이 있고 실수가 있게 마련이다. 제각각 타고난 인성과 성장 환경, 경험까지도 다르니 품성, 인격, 능력도 서로 상이하다. 그 인정에서부터 더불어 살고 평화롭게 사는 조화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사람에 대한 이해가 원만한 관계 형성의 출발인 것 같다. 사람마다 바꿀 수 없는 타고난 천성이 있고, 선악을 함께 지녔으니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방을 바꾸는 건 불가능한 일, 오히려 그 사람의 특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서로의 인생을 수월하게 사는 비결인 것 같다. 미워하고 원망한다 해서 상대방이 잘못되는 것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만 괴롭고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늘 사람 관계에서 갈등이 이는 건, 나 자신의 자유의지가 선한 마음으로 향하면 상대를 포용하나, 이해(利害) 관계에 반하고 부정적 생각이 들 땐 쉽게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속성이며 약점이다. 사람 간의 예의나 도덕적 가치도 무색해 지고, 사랑하며 살아야 할 사이도 무관심과 냉랭함으로 서먹하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의심과 불신이 팽배하다.

“내가 대접받기를 바라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성구가 있다. 사람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진리다. 남에게 대접받기만을 바라고 다른 사람을 대접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원만히 지속될 수 없다. “죄 없는 자가 먼저 죄지은 자를 돌로 치라.”는 예수님 말씀도 다른 사람의 허물을 판단하고 비판하기 쉬운 속성에서 자신을 먼저 직시하게 한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누구나 허물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사람과의 불협화음이나 소원한 관계를 풀어가는 지혜다.


달빛이 은은하다. 구름이 반투명 실크 머플러를 달에게 두르듯 스쳐간다. 그 구름을 비껴 유유히 떠가는 둥근달, 보노라니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누군가를 판단할 것도 원망할 것도 없는 원만한 기운이 가슴에 잔잔히 스민다. 아름답고 평안한 밤이다.

*사진-고아함*

*커버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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