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에서 자유로운 길

by 고아함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마태복음 6 : 26 )



비둘기 떼가 푸른 하늘을 날아갑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그들의 비상이 생기 있고 활발합니다.

숲 속에 들어서니 참새, 딱새, 까치가 나무를 들며 나며 지저귀고 딱따구리가 평화롭게 나무를 쫍니다.

밤새 어디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아침 먹이는 무엇을 먹었는지 세세히 알지 못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체로 가뿐한 날갯짓을 하고 청명한 소리를 내 편안함을 안겨줍니다.


사람은 이 땅에서 살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합니다. 머리를 쓰며 일을 하고 돈을 벌어 그 돈으로 필요한 것을 생계를 유지해 갑니다. 그 과정에서 몸 고생, 마음고생을 평생 합니다.

그에 반해 새들은 사람이 보살피지 않아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둥지를 틀고, 먹이를 먹고 단순하고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사람이 새보다 더 귀하다 했건만 사람은 사는 일이 새처럼 간단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합니다.

항상 의식주를 걱정하며 살고, 더 좋은 것, 더 많이, 그리고 각종 편리한 물건까지 구비하며, 부귀영화도 추구합니다.

그러다 보니 평생 마음에 근심 걱정 염려가 끊이질 않습니다. 바라고 원하는 것이 너무 많아, 빨리 이루어지길, 쉽게 되길 바라는데 그렇게 되지도 않아 고민에 고민이 더해집니다.


이런 사람의 속성을 간파한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요하니 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더 중요한 것을 구하며 살라고요.


먼저 '하늘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한다 합니다. 그러면 먹고사는 일을 염려하지 않아도 해결해 준다 합니다. 다행스럽고 좋은, 평안의 메시지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자연의 햇빛과 공기와 물은 여전히 토양에 공급되어 식량이 생산되고 있고 그것을 먹으며 가축과 사람이 살고 있으니까요. 옷과 집도 결국은 자연의 원료로 만들어집니다.

최첨단 물질과 물건을 자랑하지만 원료는 다 자연에서 가져옵니다. 결국 사람은 자연을 주관하는 능력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근원을 잊고 사람이 생산한 최신 옷과 음식, 주택, 편리한 물건들에 마음 빼앗겨 '하늘나라'와 '의'에는 무관심했습니다.


'하늘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창조주와 예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라는 것이고, '의'는 정직하게 살아 공의와 정의를 세우며 서로 사랑하고 살라는 의미로 깨달아집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삶을 가능케 하는 지혜와 깨달음, 능력도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마음과 생각, 의지에 생겼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때론 예측치 못한 좋은 상황과 여건이 사람의 의지와 노력과 무관하게 올 때도 있었습니다.


인생사에 불어오는 근심 걱정을 깊고 넓은 사랑의 전능자께 맡겨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염려에서 자유로워지는 평안이 느껴집니다.


*커버/하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