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하시고 가까이 가서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 누가복음 6 : 21, 7 : 13-15 )
잿빛 하늘 아래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그러다 굵은 빗줄기로 변해 추적추적 내립니다.
초록 나뭇잎이 촉촉이 빗물에 젖으며 아름드리 드리울 녹음을 준비하는 듯합니다.
비를 보며 인생에도 빗물 같은 슬픔이 있다는 걸 생각합니다. 생로병사와 불의의 사고, 일과 인간관계에서 마음에 비가 내리는 때가 있지요.
부슬비 같은 서글픔이 있는가 하면 굵은 빗줄기 같은 진한 슬픔도 있습니다.
흐르는 세월 따라 연륜이 쌓이면 열정과 다르게 내려놓아야 할 사회적 지위가 부슬비 같은 슬픔 같고, 사랑하는 사람 곁을 떠나거나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이 추적거리는 빗물 같습니다.
슬픔은 마음과 정신에 고통을 안기며 인생을 살아갈 이유나 목적까지 잃게 합니다.
한동안 힘겨운 수렁을 헤매게도 합니다.
슬프다는 건 내가 사랑한 그 무엇을 상실한 감정입니다.
나 자신을 사랑한 자존감을 비롯해 마음으로 의지하고 살았던 유무형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깨닫는 인지입니다.
인간의 슬픔 해소는 오랜 시간이 걸리며 고통으로 담금질되는 과정을 통과합니다.
그렇게 해서 인생을 통달한 현자가 되고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도 합니다.
힘든 슬픔을 겪을 때, 누군가의 따뜻한 말이나 행동이 위로로 다가옵니다.
그 위로는 괴로움을 덜고, 슬퍼서 아픈 마음을 달래줍니다.
그 위로에 잠시 힘을 내고 살아갈 의지를 돋우어 고통을 견딥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흐르고 슬픔은 조금씩 누그러지며, 어느 날엔 예상치 못한 좋은 일도 보상처럼 찾아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 것 같습니다.
슬픔 다음에는 웃을 수 있는 좋은 일이 있다는 걸 암시하고 삶의 이치로 깨닫게 합니다.
인생은 슬픔이 전부가 아니며 기쁨이 있다는 걸 소망으로 품게 합니다.
사랑의 전능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니 슬플 때 의지하고 힘을 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슬픔을 변화시켜 기쁨으로 향하게 하는 축복의 위로로 다가옵니다.
* 사진출처 커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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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솔-예수님의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