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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mi Lee Apr 23. 2024

반려꿈

곁에 늘 있어 줄 그 쓸만한 꿈




“너는 그러면 꿈이 작가야?”

꿈같은 정말 꿈 뜯어먹는 소리 같은 것을 하는 40살 언저리의 사람들을 안다. 그리고 그들을 가까이 두고 만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곁에는 자신 스스로 꿈이라는 이름으로 곧게 일어서려는 사람들로 어우러진다. 엄마라도 아이의 꿈에 기대지 않는 사람들. 물론 그들의 이름에 가족과 아이를 제할 수는 없기에 때로는 가족의 꿈, 아이의 꿈도 헤아리고 닿아야 해 자신의 꿈을 내려놓기도, 흔들리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꿈이 작가’냐는 질문에 지금의 답은 이러했다. 내 이름 적힌 책 하나를 내는 것이 내 꿈은 아니라고. 오랫동안 글과 그림을 쓰고 그리는 사람이길 바란다고. 혼자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닿아 공감하고 사람들이 봐주는 글도 그림도 만들어내는 그래서 좀 더 직업으로서의 생산자에 가까운 사람이고 싶다고 했다. 하나의 결실을 만들어내지 못한 사람의 변명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나누며 오히려 흩뿌리던 마음이 다시 곁으로 모이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바로 무엇이 되지 못한 글과 그림에 움츠러들었던 것일까? 무엇을 써서 모아야겠다는 것을 계획하고 모아갈 깜냥이 안 되는 지금 그냥 이렇게 써 내려가는 글자 하나하나와 그어지는 점과 선 하나도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아껴주고 쓰다듬을 나 자신인 것을.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이런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의로 많은 시간을 거기에 할애한다. 연봉으로 계약하고 시급으로 계산하면 몇 배를 받고 일하던 과거, 그  옛 일을 이토록 중하게 여겼던가? 일속에서 허덕이는 나 자신을 미워하고 낮추었다. 언제나 뛰쳐나가고 탈출할 날만을 기대하고 고대했다.

하지만 건당 10,000원짜리 글 하나를 쓰며 이놈의 지긋지긋한 일 끝이 없다 말하면서도 조금은 생계에 보탬이 되는 순간을 귀이 여긴다. 그 알바를 시작하며 많이 할애하던 그림과 글에 대한 시간이 줄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미움과 후회 말고 감사와 충만으로 보내게 됐다. 이렇게 글을 다시 쓰는 순간, 책상에 앉아 내 이야기를 풀어낼 때 나는 나의 만 원짜리 일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역시나 내게 글과 그림이 있음에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글과 그림을 하지 못해 조급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내게 찾아온 이 글쓰기와 그리기의 기쁨은 그것을 끝내고 마무리할 계획도 기한도 필요하지 않은 일이다. 오래 걷고 달릴 준비가 된 기분을 느낀다. 지금 나는 여전히 쓰고 있기 때문에.

곁에 남은 많은 것들은 각자 내게 반려가 된다. 반려자인 남편, 어느 날 내게 찾아와 내 남은 날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게 해 줄 아이들. 그리고 내 곁에 사람들. 때로는 눈감고, 때로는 한숨 쉴 삶의 무게, 그리고 그림과 글을 쓰고 그리는 이 나머지의 삶 모두 반려로서 충분하다. 그중 그림과 글이 있다면 나는 언제고 혼자 일어서야 할 때, 소중한 순간들을 지금으로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내가 쓴 것이든 다른 작가의 목소리든 말이다. 모두가 떠나거나 그 자신의 반려를 찾아가야 할 때조차 내 곁에 있어줄 마지막 것은 바로 이 글자와 점과 선일 것이다.




이야기가 될 많은 순간을 살고 있다고 여긴다면, 봄비를 가득 머금고 밝은 초록으로 반짝이듯 흔들리는 나뭇잎을 더 오래 보게 될 것이다. 작년에도 올해도 내년에도 이렇게 세상에 돋을 새순이지만 그것을 눈에 담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몫이다. 글을 써 내려가는 것, 기록을 하는 것이 내 삶이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 행위라는 것을 느낀다. 쓰는 것에 대해, 꿈같은 걸 꾼다고 말하는 40대가 아이를 돌보고 일을 하고, 가족 속에서 나를 건져내고 구원하는 일. 놓치지 않는 글자 하나가 마음에 덧대어져 나는 쓸만하게 잘 살고 있다고 여기게 만드는 일이다. 쓰고 그리기를 여전히 곁에 두고, 세상을 보드라운 이불을 덮어쓴 마음으로 바라보게 만들어준다.


쓰는 일, 그리는 일을 내 반려로 삼아, 그것이 무엇이 되든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아끼고 사랑할 것을 맹세하는 지금 이 순간을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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