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를 여행 후 만든 여러 이야기들
아이들 방학을 맞아 대구로 갔던, 지난 8월. 물가 찾아다니며 신나게 놀던 며칠, 그리고 혼자 시간을 낼 수 있었던 하루가 있었다. 대구를 떠나 지낸 오랜 시간 동안 대구의 근대골목 코스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늘 가보고 싶었기에 오늘이다! 바로 그런 날이었다. 무덥고 뜨거운 날이었지만 발걸음만은 신났다.
계속 가고 싶던 청라언덕. 혼자 시간을 보내며, 청라언덕에 가겠다니까 엄마는 거기 볼 것도 없다! 란다. 나도 25년, 대구에 살았어도, 청라언덕 같은 건 몰랐다. 일상을 살 때는 때로는 너무 익숙해서 지나치기도 한다. 가고 싶었고, 역시 좋았다. 고향 대구의 몰랐던 모습. 처음 만나는 대구였다.
항상 그림을 염두한다. 그리던 못 그리던 가방에 싸들고 다니는 화구들. 어깨가 아파도 꼭 들고 다닌다. 그릴 수 있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못 그리는 낭패가 더 싫다. 이번엔 스케치북이 빛났다! 그림을 완성한 줄 알았는데, [동산맨션]을 선명하게 해 주니 그림이 더 살아났다.
오래된 아파트와 더 오래된 근대 유적이 한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 이런 대구를 역시 좋아할 수밖에. 아니면 그저 떠나온 도시라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 평양냉면 한 그릇을 먹었다. 그 집은 숟가락이 없었다. 역시 냉면 국물은 호로록 마셔야 제맛인가 보다. 그렇게 시원하게 한 그릇을 먹고 계산성당으로 걸었다. 습하고 더운 날, 어떤 성당을 담을 까 고심 끝에 작은 옆문을 그렸다. 너무 오래 파고 있을 수가 없어서다. 어쩌면 비가 쏟아질지도 몰랐다. 나는 우산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날 하루, 청라언덕에서 시작해 몇 곳의 독립서점을 도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다들 꼭 가고 싶은 곳이었고,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이라 기대가 컸다.
[대구 독립서점]
떠오르는 말은 이뿐이었다. 이렇게 코스를 짰다. 끝에서 끝까지 1시간이면 충분한 내가 사랑하는 대구. 점점이 지도 속에 서점의 위치가 빛 난다. 어쩌면 걸어 다니며, 몇 일간의 여유가 있다면 둘러볼 수 있는 간격으로 보였다. 하지만 단 몇 시간의 여유동안 찾아다녀야 하니 그중 선택을 해야만 했다.
고스트 북스. 가고 싶던 곳이니까 꼭 가봐야지.
더 폴락. 오늘은 휴무.
대봉 산책. 다른 곳보다 좀 먼 것 같아.
차방책방. 동성로 부근이고, 가봐야겠다.
당장 가보고 싶은 곳이 몇 곳 있었지만, 우선순위를 정했다.
차방책방. 낡은 외벽에 단정하게 [차방책방]. 차의 방, 책의 방인가 보다. 영어로 tea room book room이라고 적고 있었다. 이동하며 만난 동성로는 내가 알던 동성로와 달랐다. 이렇게 제대로 걸어본 것도 15년 만이다.옛 기억 속 보세 옷이 총총 걸린 로데오거리, 쑥스럽게 큰맘 먹고 들어가던 수제화 가게, 신어보고, 입어보는 게 참 눈치 보였고 어떤 날은 면전에서 핀잔을 들으며 나오기도 했다. 백화점 근처에서 시작해 클럽도 있고, 술집도 많던 골목 그 어디쯤이 15년 전 주로 다닌 곳이었다. 물론 클럽도 술집도 자주 가지 않았지만, 동성로를 북성로를 모르니 늘 가던 곳만 갈 수밖에.
이번에 어느 책방을 지도에 표시하고, 낯선 길을 걸었다. 눈을 즐겁게 하는 예쁜 카페가 많았다. 이날은 월요일. 많은 가게가 쉬고 있다.
독립서 점간의 연대가 느껴진다. 고스트북스 지기인 은지님의 일러스트가 붙어있고, 함께 만든 포스터도 볼 수 있다. 이 책방에서 본 것이 저 책방에도 있다. 나의 도시에도 이런 곳이 더 많아지길 바라게 된다.
“차방책방에서 제작한 책이나 참여한 책이 있어요?”
또 그 타령이다. 있다면 다행이지만, 없으면 지기가 곤란해질까? 그래서 참여라던지, 소개된 게 있나요를 추가한 질문이다. 1990 BOOKSTORE CATS. 고양이와 함께하는 서점들을 일러스트로 소개한 책에 차방책방이 나온다고 한다.
지기님은 일러스트보다 머리가 짧아졌고, 고양이 베르는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킨다. 카드를 내밀어 계산하는데, 단말기에 꼭 몸을 붙여버렸다.
“이대로 카드를 빼면, 고양이가 놀랄 것 같은데 어쩌죠?”
“괜찮아요. 늘 그런 걸요.”
“여기가 늘 네 자리구나..”
개냥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았다. 오가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 어떤 단어 앞에 개라는 말이 붙으면 보통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는데, 개의 순수한 충성심을 떠올리면 미안해지는 말이다. 사람이 개만도 못 한 날들이 많음을 확인하면, 개들에게 미안해진다. 그러나 냥이 앞의 개는 그 본연의 뜻으로 쓰이는 것 같다. 그저 귀여운 말이 된다. 개냥이 베르.
다녀와서 베르를 그렸다. 차방책방하면 나는 베르가 떠올라서.
걸었고, 책을 샀다. 그림을 그렸고, 또 집에 와서도 그렸다. 이야기를 남기고, 그림일기도 썼다. 충분히 꼭꼭 씹어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런 작은 것을 계속 되살려야 할 만큼 변화 없는 소소한 삶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건져낼 때마다 따뜻하고 즐거워진다. 그렇게 한번 더 즐거워지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