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의 여행을 짧게 적어보기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한 여행

by Eunmi Lee


요즘은 어딜 가고 싶다는 생각을 계획적으로 하면서 지내지 않는다. 소소하게 동네 주변 나들이 정도로 주말을 보내는 일이 많다. 그래도 역시 나가는 건 좋지만. 매일은 좋아하고 마음 가는 일을 하며 지낸다. 그러려고 애쓰기도 한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고 뭘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서, 지금 할 수 있는걸 한다. 걱정거리가 있는데, 그럴수록 책에 파고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이리저리 알아봐도 또 딱히 어쩔 수 없잖아의 벽을 마주하고, 또다시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좋아하는 거나 더 좋아하자고 애쓰는 그런 반복이다. 책 속에 길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적어도 재미있으니까, 하는 수밖에 없다.


즉흥적으로 여행을 갔다. 미리 계획이란 걸 세운다면 좋을 텐데, 어쩌다 보니 여행 계획을 미리 세우지 않고, 자주 이렇게 떠났다. 계획 없이 훌쩍, 무엇을 하든 좋아서, 어쨌든 상관없는 천하태평이라 그런 건 아니다. 그런 부분도 분명 있지만, 떠올려보면 늘 뭔가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여행을 못 갈 일이 생길까 봐 그런 불안감이 늘 있어왔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미리 휴가를 잡지 못하는 자. 어쨌든 상관없는 천하태평과는 다르다. 그동안 나보다 주변이 더 중요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불안감을 내려놓는 것 역시 연습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하고 있다. 평온해 보이는 겉모습 속에, 나는 불안과 눈칫밥을 안고 살아간다. 그걸 마주하고, 나를 더 생각하는 연습 중이고, 내가 그렇게 보인다면 연습이 성공적인 거겠지. 아니면 내가 나를 잘못 알고 있었던가.

늦게 예약하다 보니, 그래도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는 곳은 정선이나, 용평 같은 곳이다. 두 곳 모두 가본 결과 나는 용평이 좀 더 재미있어서, 이번에도 용평을 다녀왔다. 연휴와 코로나 제한이 풀린 상태라 국내 관광은 어디든 난리다. 지금까지 강원도 가본 것 중에 역대급 차가 막히는 일정이었다. 평창까지 4시간이 소요됐다. 중간에 밥까지 먹고 가니까 집에서 10시에 출발했는데 4시가 되어서야 목장에 도착했다.



운전하느라 수고한 남편. 나는 옆에서 잠을 자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옆에서 재미나게 간다. 그렇다고 안 피곤한 건 아니다. 장거리 조수석 역시 피곤하지만, 그래도 그 시간을 뭔가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을 하면서 보낼 수 있으니, 막히는 긴 시간이 그리 괴롭지만은 않다.​ 뒷자리의 아이들은 삭신이 쑤시고, 남편은 운전하느라 고단하고, 늘 천하태평인 건 나뿐이다. 책을 좀 읽다 졸려오면 그림도구를 꺼내 든다. 수채화를 그려본 적도 있지만, 그건 쉽지 않다. 이번에는 마커와 색연필을 꺼내 그렸는데 차 안에서도 무리 없이 그릴 수 있었다. 찰떡찰떡.

지겨운 와중에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선물 같은 어쩌고~ 하는 듣기 좋은 노래를 부르며 달려본다. 아니.. 엉금엉금 느리게 가본다. 나는 이 사람을 만나, 좀 더 편안한 사람이 됐다. 다르게 안온한 그를 보며 불안의 가시들이 조금씩 둥글어졌다.



일기 예보도 보지 않고 덜컥 예약을 했는데, 내내 맑고 덥던 날씨를 뒤로하고 여행기간에 비가 온단다. 또 춥게 생겼네. 도착한 오후 4시의 강원도는 바람이 불고 흐리다. 고산지대의 농장에는 짙은 안개가 내려온다. 트렁크를 열어 아이들은 긴바지를 입히고, 점퍼를 입혔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이틀간 비 예고였는데 일요일 아침, 비가 오지 않는다! 일기예보도 흐림으로 바뀌었다. 보너스로 하루를 얻은 기분이다. 비가 오면 챔피언 키즈카페나 가려고 했는데, 비가 오지 않으니 급 여행코스를 짜야했다.​ 오랜만에 <월정사>에 갔다. 지난번에 짙은 안개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던 안반데기를 가볼까 했지만, 지금의 안반데기는 온통 지구색. earth색 그러니까 그냥 흙색이다. 그동안 월정사도 다시 가고 싶었으니 거기로 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다 강원도로 떠나온 것 같은 도로였는데 그래도 산보다는 바다 쪽으로 많이 갔는지 평창, 용평에서 진짜 사람 많다는 기분은 크게 들지 않았다. 월정사도 사람이 좀 있긴 하지만, 적당했다. 작은 소원 등을 달고, 경내를 둘러보고 월정사에 있는 청류다원에 들어갔다. 커피 한잔하자며 들어갔는데 커피는 옆에서 팔고, 이곳은 차만 파는 다원이다. 나는 오미자, 남편은 쌍화탕을 시켰는데 비건 카페라 그런지 노른자 같은 건 올리지 않고 준다. 쌍화탕은 한약 맛이 나고 오미자는 맛있었다. 아이들이 맛있다고 잘 먹었다.

무거운 그림 도구를 싸들고 다니는 건 틈이 나면 그림 하나를 그려볼까 하는 마음에서다. 스케치북에 팔레트, 그리고 몇 호의 휴대용 붓과 펜, 연필을 넣은 필통과 물통까지 있어 꽤 무겁다. 미니멀하지 못해서 팔레트도 꽉 채워 다니고, 혹시 물 뜨기가 여의치 않을까 봐 물통에 물도 채워 다닌다. 어깨가 아파도 내 거니까 군소리 없이 들고 다닌다. 그림 그릴걸 챙겨 오지 않아서 못 그릴 때가 더 속상해지니까 말이다.


청류다원에 들어가서 잠시 스케치를 시작했다. 붓만으로 둥글둥글하게 그리는 걸 좋아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 펜 드로잉을 시작했다. 드로잉만으로도 꽤 시간이 걸려서, 찻집에서 채색까지는 끝내지 못했다. 보고 있는 순간, 그리고 있는 지금 그 자체로 좋다.



마지막 날은 진짜 비가 왔다. 꽤 시원하게 내리는 비, 강원도의 비 오는 6월은 꽤 춥다. 가져간 옷을 이렇게 저렇게 껴입어도 추운 날이다. 체크아웃하기 전 창밖을 바라보며 풍경을 담았다. 1층에서 산책로가 보이는 방이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좋았다. 늘 좀 더 고층방은 없냐고 물어보지만, 대답은 똑같다. 이 방뿐이라는 말. 혹은 여기가 남은 것 중 좋다는 말. 정말 그랬다. 3일간 창밖의 이 풍경이 늘 싱그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느낌으로 그림을 그렸다. “아직 덜했어? 이제 가야 해.” 일찍 일어나 나 혼자 준비를 마치고, 나갈 채비를 하는 와중에 그림을 그린다. 별말 없이 각자 할 일을 하는 가족들. 자, 이제 진짜 체크아웃이다. 다행히 미리 계획하지 않았어도, 비가 와도 이 여행도 옳았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함께 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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