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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라이터 Jun 05. 2023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매일이 필라테스


새로운 길에 접어든 지 어느덧 6개월째.


드디어 주말 온종일 듣던 교육은 끝이 났고 필기시험에도 합격했다. 홀가분한 마음도 잠시, 이제는 실기 시험을 앞두고 매일 하루 4시간씩 수련 중인 하루를 보내고 있다.


제일 안 되는 동작 중 하나인 ‘Side bend'




네가 운동 신경이나 있어?
회사나 다니지 무슨 필라테스야.
필라테스 강사 요즘 그게 전망은 있니?




나의 시작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경우의 수들이었지만 생각보다 마음을 굳게 먹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회사 다닐 때만큼의 일정한 수입이 없는 것, 그래서 사고 싶은 것과 먹고 싶은 것들을 참아야 한다는 것.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백 기간으로 인해 재정상태는 또래들보다 한참 뒤처질 예정이라는 것.


이런 것들보다 더 힘든 건 나의 열망과 갈망을 겪어보지 않은 누군가가 단순히 나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예상하고 있던 것처럼 아빠의 반대가 정말 심했다.


한 회사에서 30년을 넘게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하신 아빠는 내가 대학생 때부터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는데, 이미 공무원이 된 언니는 아빠의 자랑이었다. *지금 언니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시골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언니나 아빠와는 달리, 나는 안정보다는 불안정하더라도 도전을 쫒았고 언제나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을 찾아다녔다.


그래서 늘 아빠는 나를 못마땅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퇴사를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해보겠다고 하니 내가 아빠였어도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게 무슨 전망이 있는데? 네가 운동 신경이 있어? 하고 싶은 건 나중에 결혼하고 독립하고 나서 해.”


아니나 다를까, 머릿속에 있던 시나리오대로 상황이 흘러갔다.


아빠와 이틀을 대립했고(다행히 길진 않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아빠는 “열심히 해 봐.”라는 말대신 긍정의 무언으로 전쟁 같던 대치 상황을 종료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백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는 행동으로 성취하는 것을 보여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퇴사하고 인생계획서를 작성했었다.

.

.

.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지금.


부모님은 이제 그 누구보다 나를 믿고 응원해 주시는 것 같다. 연습하다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저녁은 먹었냐며 헐레벌떡 밥상을 차리고 고생한다며 뭐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하신다.


내가 중간고사에 합격했다고 했을 때, 아빠가 가장 기뻐했다.


자신을 믿어주는 가족이 있어서 사람들은 묵묵하게 할 일을 해나가는 것 아닐까.




너 남자친구는
필라테스 강사한다니까 뭐라 안 해?



남자친구는 언제나 내가 행복한 길을 찾길 바랐다. 남자친구도 본인이 원하는 길을 탐구하고 선택하고 결정한 사람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사는 것을 바란다고 늘 말해왔다.


맞지 않는 회사 생활로 힘들어하고, 늘 한편에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는 것처럼 내 커리어를 찾아가지 못하고 있을 때, 남자친구는 나의 도전을 누구보다 반겼다.


"너라면 잘할 것 같아, 좋은 선생님이 될 것 같아!"


수입이 반토막보다 더 줄어들었을 때도, 필라테스 센터에서 잘렸을 때도 남자친구가 데이트 비용을 많이 부담해 주었고, 내가 조금이라도 미안해하는 구석이 보이면 '나중에 취업하고 사주면 되지. 그때는 맨날 사달라고 한다?!'라며 웃었다. 하지만 좋은 선물을 못 사주고, 비싼 레스토랑에 데려가지 못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얼른 자리 잡아 자랑스러운 여자친구가 되고, 커리어를 멋지게 이끌어가며 내 일을 사랑하는 배우자가 되고 싶은 마음뿐.


연습이 잘 안돼서 힘들다고 하니 남자친구가 카톡을 보냈다


어떤 날, 지인이 나에게 물었다.


“남자친구는 필라테스 강사한다고 하니까 뭐라 안 해?”

"응?"

“아니, 내 주변에 누구는 필라테스 강사는 여자친구로 사귀고 싶지도 않다고 하더라고.“


질문의 의미는 깊지 않았다. SNS에서 떠도는 필라테스 강사라는 사진을 보고 여자친구로는 사귀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아마, 타이트하거나 노출이 된 옷을 입고 찍은 사진들을 본 모양이다.


나도 필라테스 강사라면 기피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SNS 속에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몸매를 드러낸 사진을 보면 불편하고, 직업보다 보이는 이미지에 치중된 강사들이 많은 것은 아쉽다. 그렇다 해도, 이 직업에 진중함을 가지고 새로이 발걸음을 뗀 내게 저런 질문은 씁쓸하고 살짝 언짢게 느껴졌다.


그러나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을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흘려보내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만 기억하자.






다행히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덕에 온전히 교육과 시험에 몰두하고, 무탈하게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 넓고 복잡한 세상, 모두들 사랑하는 사람의 응원과 배려가 함께 하길. 그리고 나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줄 수 있는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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