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무슨 일을 해야 할까
2024년 9월 일곱 번째 퇴사를 하고 다른 일을 구한 지 어느덧 2개월이 지난다. 천천히 가라는 뜻인가. 내가 무능력해서인가. 쉽게 일이 구해지지 않는다. 본의 아니게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시간이 주어지면서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고 있가. 불합격 통보를 받을 때면 내키지 않았던 회사였더라도 마음이 별로다. 정성스러운 불합격 안내가 사람 기분을 참 묘하게 한다.
밸런스 게임 : 친절한 불합격 통보 vs 통보 없이 불합격
[마케팅]
어메이징에듀테크코리아(주)(연락없음)
마이페어(불합격)
[CS]
디깅미인터내셔널(연락없음)
페이히어(합격)
토스모바일(주)(불합격)
씨에스쉐어링(주)(불합격)
[물류]
챈더프(합격)
[카페 알바]
스트렝스커피(합격)
피크니크(불합격)
하츠베이커리(불합격)
오늘까지 총 10군데 면접을 봤다. 졸업 후 입사와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면서 7개의 회사를 다녔다. 나름의 이유들로 짧은 근무 기간을 거쳐 여러 일을 해왔다. 잦은 이직은 면접에서 단골 질문을 받게 한다.
'여러 회사를 다니셨네요, 짧게 근무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퇴사하신 사유가 어떻게 되시나요?'
이제는 여러 번 말해서 익숙해진 퇴사와 이직 사유를 솔직하게 풀어낸다. 새롭게 배우고 싶은 목표가 있어서 퇴사한 경우도 있고 회사 불황으로 임금 체불인 경우도 있었고, 직장 내 폭언으로 자진 퇴사 한 경우도 있었고, 상황에 맞춰서 내가 할 수 있는 계약직을 구해서 일을 한 적도 있었고, 해보고 싶은 일을 하기도 했고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 뽑아주는 곳에서 일하기도 했다라고 답한다.
어쨌든 내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하고 그에 맞춰서 회사에 다닌 결과다. 뭐 예쁜 길은 아니라도 구불구불 내 이야기가 담긴 길이 만들어진 거다. 나를 면접에 부른 회사는 종종 이런 경험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주기도 한다. 새로운 일에 도전한 점 그리고 해보고 싶은 일을 실패했더라도 끝까지 해본 점 등.
그러나 이미 서류에서 이 내용을 알고 부른 면접이라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면접관이 있다. 특히 인사팀과 면접관이 다른 다대일 면접의 경우 더욱 그렇다. 내가 회사의 대표라도 이유를 들어보기 전까진 짧게 짧게 치고 빠진 경력을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려 해도 단점으로 치우쳐 보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양한 회사에서의 경험이 나에겐 어떤 의미일까. 하늘로 공중분해되거나 허투루 날아가진 않았다고 생각은 하는데. 이래저래 크고 작은 상황을 직면하면서 나름의 대처 방식을 배웠다거나 다양한 회사에서 다양한 직무 경험을 짧게나마 두루두루 경험해 본 점이 나름의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호기심도 많은 편이라 새로 나온 서비스는 일단 다 경험해 보는 걸 좋아하고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마인드로 뛰어드는 무식한 면도 나름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나 스스로 방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다음 방향을 정할지는 내 몫이고 그 방향이 없는 상태라는 게 막막하다. 어릴 때는 내 나이쯤 되면(난 만 나이 챙기는 35세) 어느 한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 생긴다거나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이 될 줄 알았고 지금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내 현실. 이곳저곳 얕게 발만 담그니 전문적인 나의 분야가 없다.
모 스타트업 면접에서는 한 분야에서 10년 동안 일한 사람이 전문가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내 입장에서 한 분야에 10년이면 당연히 전문가라고 생각해서 그렇다고 답했더니 자기네 회사 가치관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럼 누가 전문가인데.
두서없이 글을 쓰니 내가 더 한심해 보이긴 한데 한심한 거 맞고 이게 내 현실이다. 직시해라. 회사라는 것이 정해진 사업 분야가 있고 그 분야에 전문 지식이나 강점과 열정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
잡코리아에서 갈만한 곳이 있나 기웃거리다 보면 여긴 도대체 누가 가나 싶을 정도로 직무에서 원하는 Job Description 자격요건과 우대사항이 상세하다. 상세하다 못해 첨예하다.
내가 갈 자리가 없다는 생각에 한없이 낮아지는 자존감이다.
최대한 직무에 나를 끼워 맞춰서 지원한다 한들
뾰족한 자격 요건 위에 나를 올리기엔 내 경험은 모호하고 넓게 퍼진 안개 같다.
지원 직무와 내 역량은 이미 너무 다른 속성이다. 어찌어찌 서류에 통과하더라도 면접 때 해당 직무에 열정이 보이는 다른 지원자와 내가 당연히 비교가 되겠지. 면접관 입장에서 본 내 공허한 눈빛은 이 직무에 크게 열정이 없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도록 했겠고 방향을 잃은 답변도 불합격의 이유 중 하나였을 것으로 유추해 본다.
나라는 사람이 온전하게 쓰일 수 있는 곳은 없을까. 일단 나의 장점과 단점을 적어보기로 한다. 이런 건 이미 20대에 끝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아니다. 난 매일 해도 부족하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해보는 MBTI나 성격 심리 검사를 매년 꼭 한 번씩은 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알아야 하는데 나는 나를 설명하고 내비치는 걸 참 어려워하는 인간인 것 같다.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어느 자리에 가던 조심성이 많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나는 이게 특정한 분야에서 전문성이 없어서라고 생각하고 직업적으로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부분이 나를 주눅 들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요즘 들어 주눅 들어 보이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 마인드 컨트롤이 절실하다.
이럴 때일수록 합리화와 Love Myself 자세가 필요하다. 아무 이유 없이 살아 있다는 존재로 나는 대단하다는 마인드. 그런 마인드를 계속 되뇌면 살아갈 힘이 어느 정도는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억지로 짜내서 직무역량에 맞추는 장점이 아닌 내 장점들을 스스로 되뇌면서 나 이런 사람이고 이런 것도 충분히 장점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지속적으로 인지시켜 주는 게 중요하다. 나를 좀 보살펴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