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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Oct 18. 2019

가난하게 사는 연습

[사적인 일기] 돈이 꿈을 쥐고 도망가, 나를 앞지른다 느끼는 어느 새벽

요즘 제일 많이 드는 생각이 있다. 또, 요즘 가장 자주 되뇌는 다짐이 있다.


"가난하게 사는 연습을 하자."


스무 살이 된 직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일'이 끊인 적이 없다. 스무 살부터 시작한 주말 아르바이트는 5년째 계속하는 중이고, 그 사이사이의 평일에는 매번 또 다른 일들을 연이어해 오는 중이다.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휴학을 해서도 이것저것 많이도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휴학이 끝나가는 지금도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석 달째 하고 있다.


모두 돈을 벌기 위해서다. 너무 당연해서 이따금 서럽기도 한 이유이기도 하다.


빚이 많은 가정에서 자랐지만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내 인생은 평탄하게 풍족했다. 모두 부모님의 노력 덕분이다. 당신들께 필요할 돈을 쪼개어 자식들의 용돈은 밀리지 않으셨고, 자식들이 갖고 싶은 물건은 꼭 사주고야 마셨던 부모님이셨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엔 기어이 자식들 등록금에 보태고 싶으셔서 각각의 통장에 6백만 원씩 저축을 해놓고야 마셨던 부모님이셨다. 물론 이 목돈은 스무 살 이후에도 용돈을 주실 수 없었던 형편이었기에 자식들의 독립을 장려할 목적으로 주시는 장학금과 같던 돈이었다.


'스무 살부턴 절대 돈 보태주지 않을 거야'란 말을 줄곧 들었던 나였기에, 또한 어른이 되어서도 자립하지 못하는 모지리가 되고 싶지 않았던 나였기에 그 길로 곧장 대학생활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내 생각에, 이때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날 헤프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내 첫 아르바이트는 결혼예식장 조리부였다.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7시에 퇴근하고, 중간에 교대 없이 줄창 맡은 홀에서 왔다 갔다 하며 뷔페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200명의 손님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치열하게 음식을 쓸어 담으면 떨어지는 음식이 없도록 채워놓고, 접시에 구멍이라도 뚫렸는지 짜증 날 정도로 흘리는 음식을 닦고, 눈 앞에 있는 젓가락을 물어보는 200명 중 100명의 손님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를 한 타임. 이 한 타임을 하루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여섯 번(보통 한 타임에 두 시간을 잡는다, 엄청나다)을 치른 후 예식장 청소를 한다. 사람들 결혼보다 이혼을 많이 한다면서 왜 이렇게 결혼식이 많은지 도무지 이해가 안 ㄷ..... 크흠....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루 종일 걷고, 뛰고, 흘린 소스나 고기를 주워 닦고, 음식 채우고, 또 닦고. 하루 종일 이것만 반복하면 된다. 이 단순한 일을 하루 12시간 반복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 첫날 출근했을 때 제일 식이 많은 홀에 배정받게 됐는데, 그날 저녁 퇴근하는 버스에서 허리가 너무 아파 일어나질 못해 정류장을 일부러 지나칠 정도였다. 이렇게 힘든 일을 왜 5년이나 하고 있느냐? 주말 이틀 일해서 한 주에 20만 원을 벌고, 그것도 매번 꼬박꼬박 주급으로 주는 알바는 절대 흔하지 않다. 게다가 매주 근무 확인 문자가 날아오는데,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되는 그런 시스템이다.


쉽게 말해, 돈 많이, 잘 주면서 가고 싶을 때만 가도 되는 알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꾸준히 나가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놀고 싶을 땐 하루를 빼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조금 꾸준한 일용직 정도?


중요한 건 매주 목요일 16시쯤 되면 20만 원씩 들어왔다는 것이다. 많이 벌었으니 많이 모아놨을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많이 버는 만큼 많이 쓰기 시작했다. 주말에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을 감안하면 평일 5일 동안 20만 원씩을 꾸준히 써 버릇한 것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또 20만 원은 들어올 거니까. 게다가 앞서 말했듯 평일에도 일을 안 한 건 아니었으니 월마다 들어오는 돈도 많진 않았지만 있었기에.


먹고 싶은 때면 먹었다. 사고 싶은 때면 샀고, 가고 싶은 곳에 가서 하고 싶은 만큼 하느라 또 돈을 썼다. 그 무렵엔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는 생각보단 무엇인가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종이통장을 쓰던 고등학생은 대학생이 된 후로 밀린 통장정리를 포기하게 됐고, 카드를 쓸 때마다 울리는 휴대폰 알림 소리를 비활성화해놓았다.


휴학을 하고, 학교를 다니는 시간이 비었다. 너무 당연하게 그 시간에 또 아르바이트를 했다. 잠깐 학원에서 보조강사를 하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다. 학원은 시급이 셌지만 그만큼 오래 일하지 않아 받는 월급이 적었다. 카페는 최저시급에 맞춰 줬지만 그만큼 오래 일해 월급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꽤 한가한 시간대에 일해서 그런지 개인적인 잡무를 봐도 괜찮았다. 그 시간에 나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틈틈이 글도 쓰며 여유롭게 일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이 일들은 평일 알바고, 주말엔 여전히 웨딩홀을 다녔다.


역시나 돈은 모으지 않았다. 모아야겠단 생각은 들었지만 모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사람은 궁지에 몰려야만 정신을 차리게 된다.


나름의 경험을 통해 느낀 바가 있다면, 사람은 쉽게 무엇이든 질리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일하고 처음 2주 간의 탐색전이 끝나면 이다음부턴 둘 중 하나다. 월급날을 향해 똑같은 일의 연속을 참고 견뎌낼 것이냐, 정이 드는 동료나 식당 메뉴 때문에라도 지겨움을 이겨낼 것이냐. 둘 중 무엇이든 상관없다. 사람에겐 일에, 월급에, 퇴근시간에, 반복된 아침 일상에 잠식되고 마는 순간이 결국엔 찾아오게 된다.


지금의 나처럼.


복학하면 자취할 생각으로 돈을 모으고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그동안 해왔던 자영업이 아닌 한 회사의 행정보조 일이기에 직장처럼 평일을 보냈다. 지금까지 석 달째 다니며 한 달에 월급 100만 원씩 모아보자 생각했다. 저금 활동엔 문제가 없다. 다만 그 100만 원을 빼고 남은 돈으로 살기에 내가 키워놓은 씀씀이의 그릇이 너무 커져 있었다. 한동안 드문드문 나갔던 주말 알바를 다시 나가며 부족한 돈을 충당했다.


그러다 문득. '뭐지?' 싶었다.


주말 알바를 끝내고 평일 알바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몸도 마음도 너무 피곤해서 카페에서 커피를 샀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데, 순간 내 영혼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직원분이 카드를 긁는데 심장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잠시 기다린 후 손에 들린 아이스 카페라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 영혼 값으로 산 게 고작 이 커피 한 잔이라니.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휴학을 해놓고, 값지게 쓰지 못한 시간으로 고작 커피 한 잔을 사고 있었나?


플라스틱 카드 속에 깃든 나를 봤다. 그 속에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에 행복하게 웃으며 글을 짓던 나는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만 살아왔고, 돈을 쓰기 위해서만 일을 했던 나밖에 없었다.


나는 너무 풍족하게만 살 줄 알았던 것이다.

나는 가난하게 살 줄 몰랐던 것이다.


가난하게 살 필요가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가난한 자의 긴장감과 욕망을 뼈저리게 느낄 필요가 있다. 퇴근 후 침대 위에 뻗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매일의 게으르고 풍족한 일상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 없는 형편에 자식 둘의 성인 목돈을 마련했던 부모님의 가난을 배워야 한다.


사실 돈이 내 꿈을 집어삼킨 것이 아니라, 돈에 잠식된 내 욕망이 꿈을 꾸지 못하게 됐음을 뼈가 아프도록 되새겨야 한다.


그렇지? 이렇게 살기 싫잖아. 침대 위에 하루의 피곤을 뉘어 그대로 잠들기만 하는 삶은 싫잖아. 그러니까 밤에 잠도 못 자고 일어나서 글을 썼지.


이 느낌을 기억해. 이 긴장감을, 이 불안함을. 그리고 이 글이 완성됐을 때 또 다른 글이 쓰고 싶어지는 설렘을.


그리고 다시 꿈 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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