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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Jan 08. 2020

가난하지만 행복할 거야, 나의 2020년은 그럴 거야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라는 사실

새해가 시작되면 꼭 새하얀 A4용지를 꺼내 새해 계획을 짜곤 한다. 물론 매년 이맘때 짠 계획들이 1월까지라도 제대로 지켜진 적이 있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빈약한 실천율을 기록한다는 것쯤이야 안 봐도 비디오다.


그래도 말이다. 그래도 해가 바뀌었는데, 시대가 바뀌었는데. 어제의 아쉬움을 내일 풀 수 있길 소망하며 내일 할 일을 다이어리에 쓰듯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해를 꿈꾸며 새해 다짐을 새로 산 다이어리에 쓰며 맞이하는 게 제 맛이지.


그만큼 지난해의 나를 사랑했기에 그만큼 올해의 나를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의 내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말이면 가슴이 시원섭섭해지고, 신년이면 묘한 부담감이 반가운 것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감흥이 없다. 2019년이 끝난 것도, 2020년이 시작된 것도 전혀 아쉽지도, 새롭지도 않다. 크리스마스도 그저 빨간 25일이었을 뿐이었고, 31일에 울린 제야의 종소리에 심장이 두근거리지도 않았다. 25살이 됐다며 난리도 아니었던 단톡방에서도 나는 묵묵부답을 일관했다.


왜일까. 이만큼 지난해의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올해의 나에게 거는 기대가 전혀 없는 것일까? 이전의 ‘나’는 꽤나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서 아쉬울 것이 없는 걸까? 그래서 선뜻 <2020년 목표>라는 제목 아래 아무것도 채우지 않았을까? 아니.


아니.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이전의 나에게 너무 큰 실망을 했기에 앞으로의 나를 포기했기 때문에, 그 어떤 욕심을 부려도 ‘나’라는 사람이 그 욕심을 실현시키려는 욕구가 없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아닌 ‘나 자신’이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똑같은 하루와 똑같은  , 똑같은  , 그렇게 쌓인 똑같은 일 년의 . 그렇게 만들어진 지금의 나에게  이상 어떤 것을 기대하고 어떤 욕심을 부려서 어떤 나를 만들  있으리라고 말할  있겠어요.


2019년을 살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이 있다. ‘나’라는 사람은 참 욕심부리기는 쉬워도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는 걸 너무 잘 아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말을 마치 대단한 걸 발견했다는 듯 말하는 것 같아 조금 쑥스럽지만 내게는 아주 대단한 발견이 분명하다. 욕심은 부리기는 쉬워도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말은 다시 말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한다 말이다. 고로 아무 욕심도 부리지 않으면,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마이너스도, 플러스도 아닌 0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24살까지의 나는 이 사실을 몰랐지만 본능처럼 행하고 있었다. 욕심은 부리되 실체화시키지 않았고, 마치 꿈을 꾸듯 목표를 꾸었다. 한창 버킷리스트를 쓰는 것이 유행일 적 친구들과 함께 모여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어내렸을 때, 잠들기 전 다이어리에 내일 할 일을 채워나갔을 때, 하물며 번뜩이는 영감에 미친 듯이 새로운 소설 소재를 구체화시켰을 때마저도.


나는 모든 일을 내일의 나에게 맡겼다. 죽기 전에 언젠가는 해보겠지 ‘진짜 하고 싶을 때에야말로’, 내일쯤이면 하겠지 ‘진짜 해야 된다고 느낄 때쯤이면’, 언젠가는 쓰겠지 ‘근데 일단 쓰는 것부터, 하는 일부터 하고 나서’. 내일이 오늘이 되면 또다시 내일의 나를 꿈꾸면서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참 영양가 없다. 나도 안다. 모르지 않다. 아니, 이제야 알았다. 이렇게 사는 게 참 영양가 없었다는 걸 이제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새로운 다이어리에 2020년을 계획하면서 계획할 것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결과가 이것이다. 지금까지 대체 나는 뭘 한 거지? 도대체 나는 그 많던 꿈들을 꿈자리에 재워두고 나는 이제까지 대체 뭘 하고 있었을까?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팔고, 젊음을 맥없이 보냈다.

일을 하기 위해 나를 만들었더니 어느새 나는 ‘바쁜 나’가 됐다. 바빠서 연락이 안 되는 친구, 공사가 다망하여 쉽사리 연락할 수 없는 친구가 됐다.

그렇게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이 과연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줬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뼈 빠지게 일해서 만든 내가 꽤나 멋있는 사람이 되었는가, 그것 또한 아니다. 그럼 지금의 나는 뭘까? 그냥 2020년의 ‘나’ 일뿐이다.


<2020년 목표> 채울 수 없었던 이 제목 밑에서 한참을 떠돌다가 펜을 내려놓았다. 애초에 채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2019년 이맘때 무슨 목표를 세웠는지, 2020년이 되었을 때 나는 어떤 목표를 이뤘는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하는지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아참. 2019년의 내가 2020년의 내게 남겨준 단 하나의 목표가 있다. 가난하게 사는 연습하기.


다시 펜을 들었다. 왜 지난해 이 같은 목표를 세웠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나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쉽게 달라지지 않는 사람이다. 여전히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실천하지 않는 것은 그보다도 더 얼마나 쉬운지 아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노곤한 평화가 얼마나 달콤한지 나는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쓸데없는 다짐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다만 지금의 형편에서도 행복하고 싶다. 버는 돈이 많지 않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살고 싶다. 더 바라지 않을 테니 덜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줄곧 2개 이상의 아르바이트를 하던 내가 가난하게 사는 연습을 하자 결심한 뒤로 1가지 일에 집중하고 있음이다.

선뜻 주먹을 다지면서 “그래, 세운 목표를 모조리 이루고 말겠다!”며 당차게 외치고 싶지 않다. 얼마 못 가 그것이 거짓말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목표 하나에 모든 열과 성을 다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내 시간과 사람과 존재를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0년의 소소한 목표이자 다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먼저 <2020년 목표> 밑에 대문짝만하게 이것을 적었다.


매일매일 가계부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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