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내 INAE Mar 05. 2020

1월과 2월의 가계부를 통계 내어봤다

<매일매일 가계부 쓰기> 55일째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매일매일 가계부 쓰기> 목표를 세운 지 두 달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가계부를 쓰고 있다. 매일매일 꼬박꼬박 썼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돈을 쓰는 순간에는 휴대폰 메모에 대충이라도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들을 쌓아두는 기간이 일주일을 넘기지 않고 있으니 꽤나 성공적으로 습관을 들이고 있는 중이다.


어머나. 세상에나. 이럴 수가.


호들갑처럼 보이겠지만, 호들갑이 맞다. 이 목표를 세운 건 처음이 아니지만 한 달이 지나 나의 소비습관 통계가 나온 건 태어나서 처음이기 때문이다. 스물다섯 살 먹고 할 자랑은 아니지만 그래도 말이다. 소박하지만 꽤나 뚫기 힘든 단단한 목표였는데 차츰차츰 해내고 있는 내 모습에 스스로 대견할 따름이다. 게다가 새해 목표를 처음으로 작심삼일로 끝내지 않는 순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뜻깊은 일이다.


잠시 딴 얘기를 하자면,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을 꽤나 길게 미뤄온 지난날의 나 자신이 조금 한심해졌다. 가계부를 매일 쓰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돈은 그렇게 쉽게 썼으면서, 딱 그 정도의 노력을 한 번만 더 투자해서 쓴 돈을 기록하는 건 왜 못했을까. 가계부를 쓰지 못하니 당연히 일기 쓸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저녁을 기다리며 하루를 살아가고, 저녁에 잠들어 다시 일어날 아침을 미워하는 무미건조하고도 의미 없이 무한반복적인 삶을 이어왔던 것이다.


이번에 가계부를 쓰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정말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갔었구나. 살아가는 발걸음마다 의미를 두지 않고, 그저 발자국이 찍히면 다시 지워지려니,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구나 가기 싫다고 억지로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구나, 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또 한 번 놀라는 중이다. 가계부를 쓰는 것만으로 내 인생을 몇몇의 순간이라도 돌아보며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에 말이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2020년 1월과 2월, 통계가 나왔다. 결과는 처참하고, 또한 놀라웠다. 가계부는 내 예상을 단 한 치도 맞아 서주지 않았다.



1. 돈이 새는 구멍을 찾아보자


가난하게 사는 연습을 하자고 다짐한 이후부터 내 나름대로 절약하자 다짐하며 살아왔다.


쉽게, 의미 없이 써왔던 지출들. 가령 갑자기 초코바가 먹고 싶어서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같이 마실 음료도 사려는데 '오' 2+1이란다, 안 살 수가 없지. 아니면 별로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전기구이 통닭을 파는 푸드트럭이 눈 앞에 보이네, 저녁 시간이기도 하고 갑자기 배가 고파지고 있네? 별로 필요한 것도, 당장 사야 할 것도 없는데 단지 시간이 남았다는 이유로 다이소에 들어가서 구경이나 할까 했더니 당연한 듯이 문구류 코너로 가서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어느새 한 아름 손안에 들어버리는 것들 말이다.


나는 이러한 의미 없는 지출들이 내 가계부의 대부분을 차지할 줄 알았다.

나는 이러한 의미 없는 지출들만 줄이면 금전적인 여유가 조금 더 생길 줄 알았다.


1월 동안 가계부를 쓸 때 주목했던 점은 카테고리를 나눠 어느 카테고리에서 지출이 많은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어느 부분에서 돈을 아껴야 할지 가닥이 설 테니 돈을 좀 더 효과적으로 아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통계를 내기 전에 예상했을 때, 총 9개의 카테고리(식비, 카페, 일회성 문화여가비, 대중교통비, 택시나 렌트 등의 기타 교통비, 종합쇼핑비, 강의나 교재 등의 자기 계발비, 월정액, 기타) 중 식비, 카페, 그리고 기타 교통비가 가장 지출이 많지 않을까 싶었다. 평소 가계부를 쓰지 않을 때에도 이 세 카테고리에서 지출이 잦고, 생각 없이 썼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월 통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당연히 식비가 많은 것이니 카페와 택시비를 줄이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과연 실제로도 그랬을까? 그 점이 조금 놀라웠다.


전체 지출 중 식비가 30%를 차지하고, 1월에는 자기 계발비를 아예 사용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7가지 카테고리가 10%씩 차지하고 있었다. 이 수치를 보고 깨달았다. 중요한 점은 가장 많이 지출이 이뤄지는 카테고리에서 절약을 실천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카페와 택시에 드는 비용이 내게 크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만큼 적은 돈을 '자주' 썼기 때문이다. 그만큼 쓴 돈을 다른 카테고리에선 한꺼번에 썼을 뿐이고. 어느 하나의 카테고리에서만 돈을 아낀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다시 가계부를 들여다봤다. 특정한 카테고리에서가 아니라 전체적인 가계부 속에서 쓰지 않아도 되는 '잉여 지출'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깨달았다.


"문제는 내가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가 아니라 '누구와' 있을 때 얼마나 사용하는지였다."



2. 1월의 구멍 : 약속 지출이 너무 많다


나의 인맥은 넓지 않다. 대신 좁고 깊은 편이다. 먼저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오는 연락을 끊어내지 않고, 카톡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메신저로 짧게 안부를 묻는 것보다는 가끔 연락을 해도 전화나 얼굴을 보고 오래오래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내 곁에 남아준 이들 모두 나와 성향이 비슷하기에 대부분 연락이 왔다 싶으면 꼭 한 번 이상의 약속을 잡게 된다. 그렇게 잡힌 약속이 평소 같으면 일주일에 한두 번에 불과했다.


올 1월은 유난히 약속이 많았다. 일주일에 많으면 일주일 모두 약속이 있었고, 적어도 3일은 약속이 있었다. 오랜만에 새해라고 연락이 온 사람들도 많았고, 평소 만나던 사람들도 1월엔 더 자주 만나기도 했다.


새해라서 그랬을까? 그도 그렇겠지만 다니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복학 준비로 자취방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하면서 "만날 수 있을 때 더 만나자"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유난히 1월에 각자의 연애나 취업, 인생 등등에 있어 생각이 많아져 술 한 잔 나누면서 털어버리자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 새해라서 그렇다. 게다가 스물다섯 살이 되는 새해라서 그런 것 같다.


그 결과로 약속 지출만 전체 지출의 50% 가까이를 차지하는 통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체 지출 중 휴대폰이나 교통카드 요금 등의 월정액을 제외하면 거의 70% 정도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내가 가난하게 살기 위해선 약속을 줄여야 할까?


약속 지출이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와 만나면서 분위기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쓰는 돈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만나서 밥을 먹고, 카페를 가고, 때론 술을 마시거나 문화생활을 즐기는 데 쓰는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같이 쇼핑을 하러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정신 차려보니 필요가 없거나 살 계획이 없던 물건을 덥석 사버리게 되거나, 카페를 가더라도 시키지 않아도 되는 디저트나 사이즈를 굳이 업그레이드하지 않아도 되는 음료를 산다거나, 술값을 내가 계산하고 "나중에 네가 사"라고 말하는 것 등등.


구구절절하게 쓰다 보니 구질구질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신경을 쓰고 있는 내가 가장 문제다.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내가 가난하게 살기 위해선 약속을 줄여야 할까?


답은 반반이다. 약속을 줄여야 하는 것도 맞지만 누군가와 만날 때에도 끊임없이 나 자신을 절제해야 한다.


약속을 줄일 필요도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건 누군가가 내게 언제 만나자고 말할 때 금전적이든 시간적이든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거절할 수 있어야 함이다. 마음은 아프지만 현실이다. 아무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많다고 해도 사람을 외부에서 만난다는 건 결국 다 돈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럴 수 있는 돈이 없다면 없는 상태에서 만나러 가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겐 민폐이고, 나 자신에겐 스트레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이라면 그들을 만나러 나갔을 때 사소한 지출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어쩔 수 없다. 난 돈이 없고, 없는 상황에서도 더욱 가난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3. 2월의 변화, 그리고 또 하나의 구멍


1월의 통계에 그렇게 충격을 받고 난 후 2월 가계부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일단 2월의 약속 지출이 절반으로 줄었다. 역시 새해의 입김이 셌던 것일까? 사실 약속이 줄어든 이유도 있겠지만 약속은 일주일에 4번 정도로 꾸준히 있었다. 아무래도 지난달의 가계부에게 '생각하고 돈 써~'라며 호되게 혼난 덕분인지 누군가와 만나 돈을 쓸 때도 최대한 나 스스로에게 드는 돈만이라도 줄이려고 노력을 했던 것이 성과를 보인 모양이다. 약속 지출 속의 쓸데없는 잉여 지출은 눈에 띄게 줄어들긴 했다.


그런데. 변수가 다른 곳에서 생길 줄은 몰랐다. 물론 전체 지출이 지난달 대비 10% 정도 줄어든 건 있지만 지난달과 같은 소비패턴이었다면 약속 지출이 이만큼 줄었는데 비슷한 폭으로 절약을 했어야 되는 게 맞지 않는가?


약속 지출을 줄였는데도 전체 지출에 변화가 별로 없다는 것은 그만큼 개인지출이 늘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나는 또 어디에 돈을 썼을까?


딱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자취'.


한숨.


배달의 민족 광고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돈을 모으려면 마트에 가지 마라."


아니다. "돈을 아끼려면 자취를 하지 마라."


(다음 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매일 가계부를 쓰기가 얼마나 어렵냐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