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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May 17. 2019

마음대로 하기 전의 자기반성

[사적인 일기] 본격적으로 전의를 불태워보자

엄마는 말씀하셨다.


"하고 싶은 거? 해. 너 마음대로 해. 대신에 하고 싶은 거 다 할 만한 자격만 있으면 돼."


사실은 '그만큼의 돈을 벌면 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말이 그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단순하게, 그리고 패기 있게 생각했다.


'자격? 그런 게 뭐가 중요해. 내가 하고 싶으면 하면 되는 거지. 암! 그러다 성공하면 돈 버는 거지.'


그리고 지금. 난 엄마 말씀을 천 번이고 곱씹으며 후회하는 중이다.


하고 싶은 걸 하려면 할 자격을 갖추면 된다. 그것은 돈이 될 수도 있고, 재능이 될 수도 있으며, 열정이 될 수도 있다. 사실 그 셋 모두가 시의적절하게 이뤄져야 하고, 적당한 시기를 만나기 위해 끈기 있게 꾸준히 해야 한다. 그리고 끈기를 끈기 있게 밀고 나갈 정도로 절박해야 한다. 그래야 하고 싶은 걸 할 자격이 생긴다. 마치 해리포터의 지팡이처럼, 아니, 길고양이처럼, 하고 싶은 것이란 자기 주인이자 집사를 알아보는 법이다. 나를 감당할 정도로 강하고 다정한 사람이어야만 한다.


난 그게 안 됐다. 재능은 있는지도 모르면서 있으려니 생각만 했고, 열정은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자며 침대 맡에 방치해뒀다. 돈도 없어서 전문적으로 뭘 해보지도 못하는 주제에 끈기를 밀어붙일 정도로 절박하지도 않았다.


어릴 땐 그랬다. 그때, 작가와 편집자가 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고등학생의 나는 내 미래가 너무 멀고 아득해 보여서 어렴풋한 꿈처럼 상상만 했을 뿐이었다. 언젠가는 작가든 편집자든 뭐든 하고 있으려니 생각만 하고 당장 밥버거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에게 달려가 야자를 쨀 궁리하기에 바빴다. 시야가 좁았고, 지나치게 낙천적이었다. 어떻게든 될 거라며 내일의 내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 결과로 지금의 나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나쁜 자식. 바보 자식. 그때는 몰랐겠지. 그때 내가 글을 쓰지 않은 만큼, 책을 읽지 않은 만큼, 무엇이든 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만큼 지금의 내가 얼마나 고통받게 됐는지 말이다.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내 인생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서 학과 생활과 동아리에 더불어 학내 신문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평일, 주말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고, 바쁜 와중에도 만날 친구들은 다 만나고 다니고, 연애도 곧잘 했다. 잠자는 시간까지 꼬박꼬박 챙기며 하루가 지나가는 줄 모른 채 살았다. 이렇게 보낸 하루는 내일 다시 리필될 거라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눈 한 번 깜빡했더니 3년이 흘러 있었다.


그 사이에 읽은 책이 단 한 권도 없었다. 쓰자고 마음만 먹은 소설이 20편이 넘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도 생활비로 쓰느라 남지도 않았고, 기계적으로 살다 보니 성격도 차갑게 변해 사람도 많이 잃었다. 3년 동안 학생기자로서 꾸준히 글을 쓴 건 다행이었지만 그나마도 내 문체를 완전히 바꿔버려 예전과 같은 소설을 쓸 엄두조차 못 내게 됐다. 게다가 신문사 생활에 너무 집중한 탓(나 하나에 너무 많은 일을 벌여놓은 탓)에 오히려 학과 생활을 아예 못해 성적도, 친구도, 교수님도 잃었다.


지금의 나는 망가졌다. 어릴 땐 그저 내가 다 잘할 줄로만 생각했더니, 그때 꿈으로 꾼 지금의 나는 너무도 볼품없다. 내 그릇이 작은 줄도 몰랐고, 알았더라도 그 작은 그릇에 무엇을 넣어야 할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 무지의 결과를 톡톡히 치렀다. 나는 내 안의 글을, 언어를, 그리고 나를 잃었다.


그런 나를 견딜 수가 없어서 3학년이 끝나고 휴학을 감행했다. 모두가 말렸다. 가족들과 친구들의 걱정 어린 얼굴 앞에 손사래를 치며 "걱정하지 마, 나잖아"라고 말했지만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갔다. 걱정이 된다, 나라서. 지금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시작하지도, 끝맺지도 못한 주제에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있는 대학에서 뛰쳐나와 대체 뭘 하겠다고? 나는 이 질문에 아무 대답을 못할 것이란 걸, 나는 나를 너무 잘 알았다.


일단은 좀 쉬고 싶었다. 3년 동안 생각할 틈도 없이 바빴다. 학과에서의 나, 신문사에서의 나, 동아리에서의 나, 학교에서의 나, 동네에서의 나, 알바에서의 나… 도저히 하나의 정신으로는 모든 곳의 모든 일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인격을 쪼개듯 살아왔다. 만나는 사람마다, 스치는 장소마다 나를 바꿔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집으로 돌아오면 수많은 내가 한 데 모여 서로의 방송을 일방적으로 틀어놓듯 생각이 너무 많아졌다. 마치 화면과 음성의 싱크가 맞지 않은 영상처럼 어지러웠다. 그래서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단 하루라도 제대로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보고 싶었다.


하루는 무슨, 1년이 지났다. 숨만 쉬었는데 1년이 지나 있었다. 내 인생에서 신생아 때를 제외하고 가장 기억이 없는 한 해였다. 그렇게 3년을 대장간에 불을 지피듯 달리던 사람이 한 번 식은 감을 알게 되니 다시 불을 때우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사람은 역시 사람이었다. 나태함이 주는 달콤한 나른함은 중독이 너무 심해서 사람에게 치명적이다. 미래고 뭐고 일단 자고 내일 일어나서 생각해볼까? 일어났으니까 일단 밥을 먹어볼까? 배부르니까 졸린데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볼까? 이 짓을 1년 동안 해낸 것도 성과라면 성과겠다, 는 헛소리.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린다면 정말 큰일이겠지만 다행히도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휴학을 1년 연장하고 드디어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이제 더 낭비할 시간이 없다. 쥐뿔 가진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물러설 곳이 없다. 이 이상의 나를 잃기 전에 있는 나만이라도 보호해야 한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나는 살아야 한다. 살아보자. 살아가자.


이렇게 패기 있게 말해놓고 또 '갑자기 졸린데,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면 안 되나'란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게으름은 습관이라 고치려면 시간과 정성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갑자기 부지런한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인생이 걸린 문제니 독해져야 한다. 먹고는 살아야지. 돈은 벌어야지. 내가 원하는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고 싶다면 정신 차려야지.


습관처럼 무거운 눈 그대로 감지 말고 일어나서 물이나 한 잔 마시자.

조용한 집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음악을 틀지 말고 책을 보자.

책을 시작하기에 마음이 무겁다면 다시 눕지 말고 글을 쓰자. 뭐라도 쓰자.


별의별 변명이 다 통하지 않게 내가 잘 막아볼 테니까 더 이상 게으른 나에게 휘둘리지 말고 떳떳해지자. 잘 살아야지. 하고 싶은 거 하며 살 만한 사람이 돼야지. 책으로 먹고살고 다 하고 싶다며. 그렇게 살아봐야지.


제발, 잘 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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