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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Aug 02. 2020

엄마는 왜 하필이면 아빠랑 결혼하셨을까?

[나의 가난의 뿌리를 찾아서] #1

부모님은 참 자주 싸우셨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느끼기에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무섭게 싸우셨다. 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향해 쓰레기통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 앞에서 엉엉 울고 있는 오빠와 나. 소파에 나란히 앉힌 오빠와 나는 부모님이 격렬하게도 싸우시는 그 모습을 마치 불편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처럼, 그러나 결코 마음대로 상영관을 나설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였었다.


아이들로 하여금 부모의 다툼을 목격하게 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 되지 못하지만 그런 잘잘못은 따지지 않고 싶다. 지금은 오빠도 나도 번듯하게 자라났고, 여전히 부모님을 사랑하니까. 다시 태어나도 나의 부모님의 더 나은 자식이 되고 싶으니까. 단지 그때는 그랬다는 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숱하게 싸웠던 예나, 정말 손에 꼽게 가끔 싸우는 지금이나 한결같은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돈’이다. 그놈의 돈이 살게 하고, 또 살기 싫게 한다. 지금은 물론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돈 문제에 매우 예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솔직히 애들이 뭘 아냐는 어른들은 당신의 어린 시절을 잊었기에 색안경을 낄 수 있는 것이다. 애들은 다 안다. 적어도 본질은 안다. 애였던 나는 부모님의 불화의 본질이 ‘돈’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다만 어린 시절의 나는 굉장히 편파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시절, 아빠의 육아를 그리 중요하고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아빠들이 그랬듯 나의 아빠도 그랬다. 코골이가 어찌나 심하면 아빠가 저러다 숨 막혀 죽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심하셨고, 하루 중 처음 아빠의 얼굴을 보는 건 아빠가 퇴근한 후인데, 다녀왔다는 인사도 없이 정리되지 않은 신발장을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하셨다. 오빠는 안 시키시면서 맨날 나만 물 떠 와라, 컵 가져와라, 불 꺼라, 불 켜라며 잔심부름에, 퇴근 후엔 말없이 집안에 구비해놓은 헬스기구로 매일 운동을 하시고는 샤워 후 취침.


어린 나는 아빠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항상 아빠의 퇴근이 임박하면 어디 정리되지 않은 구석이 있나 긴장하기 바빴지.


그런 아빠의 희생 아닌 희생 덕분인지 엄마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했었다. 재잘재잘 수다도 엄마에게 쏟아부었고, 공부를 시키는 엄마를 실망시켜드리기 싫어서 열심히 했었다. 오빠보다 글씨를 잘 쓰는 내 모습에 엄마가 칭찬해주시니 한동안 학습지 숙제는 안 해도 글씨 연습은 꼬박꼬박 했었다. 잠도 꼭 엄마 옆에서 자려고 했고, 행여나 아빠 옆에서 자야 된다면 아빠의 코골이가 듣기 싫어서 자는 아빠의 코를 손으로 눌러 막아대던 어린 시절이었다.


확실히 아빠보다 엄마가 더 좋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자주 싸우시던 부모님의 모습을 여러 번 관찰한 내게 가장 큰 의문은 이것이었다.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하셨을까?”


엄마는 하고 많은 남자 중에 왜 아빠와 결혼하셨을까?

엄마는 왜 하필이면 아빠랑 결혼하셨을까?

엄마는 아빠의 어디가 좋아서 결혼하셨을까?


코도 골고, 말도 없고, 운동만 하는 잔소리 대마왕이 대체 뭐가 좋아서, 지금도 이렇게 눈만 마주치면 싸우면서 대체 왜 결혼을 하셨을까?


아마 고등학생 때부터일 것이다. 장난스레 엄마에게 묻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어?”


엄마는 답하셨다.


“아빠가 돈이 많은 줄 알았지.”


납득했다. 사실 아빠는 지갑에 돈이 많으셨다. 형과 함께 사업을 하셨던 아빠는 항상 두툼한 가죽 지갑이 빵빵하도록 현금뭉치를 어마무시하게 가지고 다니셨다. 그때는 오만 원권 지폐도 없었는데, 혹시 그 당시에 오만 원권이 있었다면 좀 얇았을까 잠시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그래도 아빠는 꿋꿋이 만 원권 지폐뭉치를 가지고 다니셨을 것 같다. 말이 없는 아빠지만 은근히 자랑하는 걸 좋아하셨으니까. 하지만 그 모습도 초등학교 때 일이지, 내가 중학생이 되던 시기에는 (어쩌면 굉장한 클리셰지만) 부도가 나는 바람에 빵빵한 가죽지갑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잊을만하면 엄마에게 여쭸다. 왜 결혼했냐고.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결혼했었냐고. 그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아빠가 돈이 많은 줄 알았다고. 그래서 납득했다. 납득하기 너무 쉬운 설정이었다. 아빠는 돈이 많았고, 누군가의 자산이 누군가에겐 매력으로 다가가기 충분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많은 돈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엄마는 부유하지 않았으니까.


알음알음 들어왔던 엄마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강원도 시골에서 자랐던 엄마의 가정은 너무 가난해서 엄마가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할 정도였고, 그 당시의 남아선호사상에 의해 남동생의 원활한 진학을 위해 엄마의 진학을 포기했어야 했다. 서둘러 어떤 기술이라도 배워야 했고, 수도권으로 넘어와 돈을 벌어야 했다. 고단한 유년시절을 지나 젊은 엄마는 번듯한 옷차림에 두툼한 지갑을 가진 아빠를 만났고, 금방 결혼을 결심했다. 그리고 아빠의 부도, 가난한 현재.


이것이 엄마의 결혼 이야기의 전부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얄팍한 인생 지식으로 바라본 엄마의 성장배경과 간단한 엄마의 대답으로 나는 엄마를 어느새 돈 때문에 결혼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부모님의 다툼을 여러 번 목격한 경험을 토대로, 멋대로 결론을 내리기에 이른다.


‘부모님은 언젠가 이혼을 하시겠구나.’


그런데 이상하다. 서로 거의 죽일 듯이 싸우는 부모님이지만 결코 이혼은 하지 않으신다. 아빠의 사업이 부도가 났을 당시에도 넌지시 ‘위장이혼’을 말씀하시긴 했지만, 그래서 어린 나를 대동한 엄마가 변호사를 찾아가기까지 했지만 결코 두 분이 헤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설정이 파괴된 걸까? 부유해지고 싶어 한 결혼이라면 다시 가난한 상황에 봉착했을 땐 결혼을 물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두 분이 이혼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 때문인가 보다 싶었다. 내가 아직 어려서. 아빠가 부도가 난 것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무렵이었고, 30평대 신식 아파트에서 20평대 구식 아파트로 이사하고, 아빠가 일도 하지 않고 매일 술에 취해 사실 때조차 결혼을 포기하지 않으신 건 내가 아직 미성년자라서 그렇구나 싶었다.


얼른 독립을 해야겠다.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을 해야겠다. 할 수 있다면 성인이 되기 전이라도 알바를 구하고 고시원에라도 들어가 살아야겠다. 정말 되지도 않는 결심을 했다. 이 결심이 되지도 않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랬다. 어차피 성인이 되기 싫어도 될 텐데, 그럼 부모님은 황혼이혼이라도 하겠구나.


그러나 지금도, 오히려 지금 훨씬 더 깨가 모래알마냥 사르르 흐르는 부모님이시다. 대체 뭘까? 아니, 이혼은 둘째치더라도 어째서 사이가 더 좋아지셨을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난이라는 건 생각보다 큰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기 때문일까? 그래서 부유함은 큰 매력점이 될 수 없는 걸까?

결혼이라는 건 드라마나 영화에서 비춰지듯 쉽게 해서 간단하게 무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인생의 동반자라는 건 누군가의 부유함도 가난도 함께 나누고 감당할 준비와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들인 것일까?


굉장히 깊은 고민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의 의문, 최초의 의문이었던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을까?’의 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풀린다. 그 수많은 설정 충돌의 해결책이란, 그래, ‘아빠가 돈이 많은 줄 알았어’라는 엄마의 답이 유일한 답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었다.


엄마의 유년시절이 가난했다. 맞다.

아빠는 돈이 많아 보였다. 이것도 맞다.

결혼 후 아빠의 사업이 부도 나 가계가 기울었다. 또 맞다.


하지만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부모님을 이혼으로 이끌지 않았던 이유는 엄마의 오랜 가난이, 아빠의 잠깐의 부유가 당신의 결혼을 성사시킨 요소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당연한 얘기를 납득하고 또 이해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얼마 전, 엄마에게 오랜만에 안부를 묻듯 여쭸다.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어?”


엄마는 적당히 숨을 고른 뒤 처음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엄마가 어릴 때, 정말 가난했어.”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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