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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Dec 02. 2020

가난한 시골 여자가 만난 돈 많아 보이는 도시 남자

나의 가난의 뿌리를 찾아서 - #2

엄마는 늘 두 가지 결핍에 시달리셨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러셨다.


하나, 풍족한 재산.

또 하나, 가족의 애정.


누군가의 결핍은 그의 가정환경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엄마의 결핍도 엄마의 어린 시절에서 그 원인을 헤아려 볼 수 있으리라.


엄마는 이십 세기 중후반의 여인들이 그랬듯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으로부터 소외된 강원도 산골 어느 집안의 셋째 따님이셨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언니 두 분은 일찌감치 돈을 벌러 고향을 떠나셨다. 집안엔 어린 엄마와 더 어린 남동생이 있었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집안을 이끌어 가셨다.


사실 외할아버지께선 지금의 내 기억에서도 그렇고, 엄마에게서도 마찬가지로, 결코 좋은 가장이자 남편이자 아버지는 아니셨다. 내 기억에 외할아버지께선 늘 누워 계셨다. 두터운 이불속에서도 앙상한 뼈마디를 볼 수 있었고, 늘 누운 채로 누군가에게 재떨이나 소주 심부름을 시키셨다. 그 모습은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부터 일관되게 유지되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한 달 중 일주일 가량만 노가다를 뛰시고, 나머지 삼 주 정도는 그렇게 누워 계셨다. 잠깐 번 돈으론 술과 담배를 사셨고, 술주정도 꽤 고약하셨는지 그 주정을 어린 엄마와 어린 삼촌께 부리셨단다. 실질적인 생활비는 타지에서 일하는 언니들과 다른 사람 집에서 일손을 돕는 외할머니께서 마련하셨다.


모두가 저마다의 사정으로 바빴다. 가족들은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아꼈다. 필히 그의 딸이자 동생을 가족이란 이름으로 사랑하셨겠지만 엄마는 그 사랑을 듣지 못했다. 사랑을 배우지 못했다.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도 엄마는 사랑을 배우지 못해 사랑을 주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인생의 가능성은 남동생의 대학 진학에 맡기고,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언니가 사는 집으로 와 일을 시작했다. 집에 생활비도 보내는 언니에게 용돈을 받으면서 내내 마음의 빚을 쌓아갔지만 언니에게 용돈을 받지 않을 수도, 언니의 집에 얹혀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좋은 손재주를 살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배웠다. 바느질을 배우고, 요리를 배웠다. 큰 일, 작은 일을 가리지 않으셨다. 살아 남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했다. 남들 모두 하나쯤 가지던 흔한 꿈을 가질 여유는 없었다.


이십 대 중반을 향해 갈 때 아빠를 만나셨다. 엄마는 아직까지도 “네 아빠가 돈이 많은 줄 알았어”라며 두툼한 아빠의 지갑에 속아 넘어가신 듯 말씀하셨지만, 단 한 번 엄마가 속내를 털어내셨다.


아빠와 처음 만난 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할머니께 “이상하게 편안한 남자를 만났어”라고 말씀드렸다. 그게 아빠의 첫인상이었다고 한다. 이상하게 편안하고 말이 잘 통하는 남자. 더는 연이 없을 것 같아도 누구 하나 먼저 연락을 취했고, 만났고, 오래지 않아 엄마와 아빠는 결혼을 하셨다. 결혼 뭐 별 거 없나 보다.


는 개뿔. 신혼여행 첫날부터 싸운 것이 화근이었던 모양이다. 이상하게 편하고 말이 잘 통하던 그 남자는 도대체 어디로 갔나. 제주도까지 가서 대판 싸우고 돌아오시고 또 싸우고, 오빠를 낳고도 싸우고, 나를 낳고도 또 싸우셨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기억하고 태어나기도 전부터 내내 싸우셨다. 이 정도 싸움이고 서로 맞지 않으면 이혼하시지, 라는 생각을 지금도 섣불리 하곤 하지만, 지금도 이혼이라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그 옛날엔 오죽할까. 사랑이 희석된 자리엔 ‘가족’이라는 의리가 자리 잡았다.


하지만 결혼은 현실이다. 함께 가정을 꾸리고 유지하고 번성해야 하는 것이 결혼이고,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이상하게 편하고 말이 잘 통하던 그 남자는 멀끔한 정장 차림에 지폐가 두둑한 지갑을 들고 있었다. 엄마는 편안한 그 남자의 능력과 배경을 믿었다. 도시남자인 줄 알았던 그 남자는 만나던 당시엔 그의 형과 멀쩡한 사업을 하나 하고 있었고, 사업을 하기 전엔 퇴직금이 당시 서울에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인 직업군인 출신이었다. 그의 집안은 경기도 외곽 시골에 성씨 마을 중에서도 꽤 중심지에 근사한 전원주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집안 식구들은 모두 그 집이 그 남자, 아빠의 것이라고 입을 모았었다.


엄마는 아빠를 믿었다. 아빠의 편안함을 믿었고, 아빠의 집안을 믿었고, 지갑을 믿었다. 아빠와의 결혼생활을 믿었다. 신혼여행 중의 싸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빠와 꾸리는 가정과 함께 낳은 아이들을 품었다. 어린 시절 누리지 못했던 풍부한 사랑을 누리고 싶었고, 돈 걱정 없이 그저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참 야속하게도, 그리고 진부하게도, 아빠가 큰아빠와 하시던 사업이 부도가 나기 전까지 말이다. 그때가 아마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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