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들의 언어
제품 디자이너로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흔히 제품의 외형을 흐르는 시각적인 모든 면이 디자이너 혼자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럴 때면 같이 일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은 아쉬운 소리를 할 것이다.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와 표현을 거쳐 세상에 태어나지만 그러기까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도 제품의 성공적인 탄생을 위해 수많은 자료를 공유하고 거듭된 서로의 아이디어 논의를 통해 갈고 닦아진 제작물이 세상에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이야기는 그 과정 속에서 만난 말이다.
여느 때처럼 당시 프로젝트 제품에 대한 디자인 시안을 발표하고 그 안에 대한 의견을 받을 차례였다.
창작의 고통 후에 탄생한 자신 있는 디자인 시안이라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그렇듯이 어지간하면 발표한 시안에 대해 고수하는 태도를 보일 셈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적지 않은 경력의 나에게 들어보지도 못하고 생각해보지도 못한 질문이 말문을 막히게 했다.
같은 팀 내에 기획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의 말이었다.
덧붙이자면 외국사람처럼 완전히 영어로 말하는 것도 아니면서 표현하는 단어의 대부분은 영어라는 것이다.
평소에도 쓴소리가 습관처럼 배어있던 직원인터라 다른 회의에서는 오히려 귀에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내게는 그야말로 쓴 약이었다.
그 질문을 받은 찰나 머릿속에서 내가 했던 말들을 되짚어 보았다.
"이번 시안의 컨셉은.......
..컬러에.....
...비비드.....
모노톤...
......엣지...
...라인을 살려.......
이곳은 샤프한...
..블랙 엔 와이트로...
..심플....." 어쩌구 저쩌구....계속되는 영어단어들.. 순간 부끄러웠다.
논지에서 빗겨나간 질문이라 회의에 유연함을 핑계로 웃으며 대답해도 되건만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리에 함께 있던 말빨 좋은 디자이너들이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잠시 흐른 침묵으로 디자이너들 스스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반성을 대신했다. 하지만 왜 잘못되었는지 아니 그것이 정말 잘못인지 나처럼 그들 자신의 모습들을 필름으로 되감아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핑곗거리를 찾자면 우리나라에 디자인 산업이 들어온 발판이 일본, 미국이다. 특히나 인쇄쪽은 제조공정으로 넘어갈수록 현장에서 일본어가 많이 쓰인다. 시간이 지나며 지금은 많은 단어가 우리말로 대체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혼재하다. 그들과 원활한 소통을 해야 하는 디자이너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디자이너들이 쓰는 프로그램이며 아이디어 자료로 보는 참고 자료들 역시 영어권이 부지기수이다.
그렇다고 모든 디자이너들이 영어로만 대화하는 것도 아니며 우리말이 서툰 것도 아닌 토박이 한국인이라 시키지도 않은 부끄러움이 올라온 것이다.
회의에서 속으로 한대 얻어맞은 나는 그 뒤부터 내 말에 귀가 기울여졌다. 입으로 나가기 전에 애지간하면 머릿속에서 한번 우리말로 걸러내고 내보내는 습관까지 생겼다. 피치 못할 외래어인가 대체 가능한 외국어인가 점검해보는 것이다.
말에는 얼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들에 우리 역사 변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다.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당시 우리말에는 지금의 영어만큼이나 일본어가 혼재했으며 6.25 전쟁 후 미국 문화의 밀물에 오늘날 어떤 단어들은 우리말이 어색할만큼 영어로 대체되어 쓰인다.
문화의 개방성과 말이 전혀 연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내 것은 잊고 남의 것만 쓴다는 것은 문제 아닌가?
내 선조들이 쓰던 말은 촌스러운 것이고 남의 선조가 쓰던 말이 현대적이라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나를 세상에 있게 해 준 얼이 흐려지고 남의 얼이 물타기되며 나의 색이 혼탁해지는 꼴이다.
그 쓴소리 잘하던 직원의 말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도 생각 없이 남의 말이나 쫒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내 말도 제대로 못하고 남의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문장에 어쭙잖게 쑤셔놓고 잘난척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은 천지차이다.
칼을 앞세운 문화 강점기 속에서도 가까스로 살아남은 우리의 말이 칼 없는 문화개방기 속에 오히려 그 존재가 베어 나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직장 선배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