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화농성 한선염이 찾아온 것은 2019년이었다. 나는 다낭성 증후군이 있기 때문에 생리가 불규칙했고 한동안 생리유도주사와 경구피임약을 복용했었다. 억지로라도 생리가 나오게 하기 위해서 생리유도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겨드랑이가 붓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생리할 때 겨드랑이가 붓거나 배가 심하게 아프거나 하는 증상이 없었는데 20대가 되고 나서 이러한 증상들이 심해졌다.
생리가 다시 정상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피임약 복용을 끊기는 했으나 생리할 때만 되면 겨드랑이가 붓고 멍울이 생겼다. 그러다가 2019년에 갑자기 겨드랑이가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고 종기가 나서 고름이 터졌다. 내 겨드랑이를 들어서 거울을 보는데 정말 징그러웠다. 배농이 된 곳이 구멍이 뚫려서 피가 나왔고 고름도 나왔으며 악취까지 났다. 이 상태면 병원을 갔어야 했는데 나는 단순한 낭종정도라고 생각하고 병원을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왼쪽만 그러다가 오른쪽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이 상당해서 겨드랑이를 들 수가 없을 정도였다. 2019년에 잠깐 중국을 다녀왔는데 그때도 통증이 상당했고 겨드랑이에서 피가 나와서 흰 옷을 입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잠깐 국내로 귀국해서 "화농성 한선염"이라는 질병을 진단받았다.
이 병이 정말 지랄맞은 것은 희귀병이기 때문에 국내에 절대적으로 환자 수가 적다는데 있다. 환자 수가 적다보니 건강보험에서도 이 병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처음에 이 병을 진단받고나서 네이버를 검색했더니 "균"에 의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해서 나는 주변 환경이 더러워서 생긴건줄 알았다. 집에 가끔가다 습기차서 곰팡이가 피기도 했어서 그게 원인인가 했다. 이 병이 자가면역질환이라는 것을 아는데까지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병원에서도 이렇다할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한선염에 걸렸을 때는 이 병이 얼마나 심각하고 희귀질환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나중에 가서야 화농성 한선염을 진단받은 사람이 국내에 고작 8천명밖에 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가면역질환이고 희귀난치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진단받은 사람이 적다 보니 산정특례도 정말 늦게 도입되었다. 현재 휴미라가 치료제로 사용중이고 겨울에 코센틱스가 치료제로 승인을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환자가 적다 보니 건강보험측에서도 휴미라에 대한 산정특례를 2022년쯤에서야 해줬다.
또한, 이 질병은 기타 다른 피부질환과는 다르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다준다. 나도 아토피, 건선 등을 앓았지만 피부통증은 없었다. 단지 가려움만 있었을 뿐이지... 그런데 한선염은 약간의 가려움+종기로 인한 통증이 관절 아픈것 보다 더 심하다. 한선염이 활성기에 놓였을 때는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는 수준이다. 조선시대에 많은 왕들이 종기로 인해서 사망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종기가 났다가 사라짐을 반복하는 이 병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한다.
나의 경우 처음 겨드랑이에 났고 나중에 서혜부쪽에 하나가 생겼고 엉덩이쪽에도 생겼다. 하지만, 서혜부는 그이상 번지지 않았고 엉덩이쪽도 생겼다가 가라앉았다. 아마 그 이유는 내가 그때부터 병원을 열심히 다니기 시작하면서 약을 복용해서 진행을 어느정도 늦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처럼, 그리고 내가 경험했던 건선과 같은 피부질환과 마찬가지로 한선염은 다른 부위로 병이 점점 퍼진다. 초기에 잡지 못하게 되면 엉덩이, 사타구니 등 다른 곳을 침범해서 삶의 질이 심하게 저하되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떠오르게 만든다.
그리고 희귀질환인 만큼 이 질병에 대해서 잘 아는 의사가 없다. 대학병원 피부과를 방문하면 대부분 의사들이 이 질병에 대해서 알고는 있으나 치료 방법에 대해서 적극적이지 않은 편이다. 단순히 항생제를 처방해주고 끝인 수준이다. 물론, 이 병의 치료제가 항생제인 것은 맞으나 환자의 치료에는 의사의 관심과 따뜻한 말도 병의 차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나 역시 처음에 아산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후 1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이소티논과 같은 약만 몇 번 받았을 뿐이었고 이후 삼성병원에서는 항생제를 몇 번 처방해준 뒤 "완치가 없는 병"이라는 소리를 듣는게 다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의 친절한 설명과 치료에 대한 열의가 없었더라면 나도 더이상 치료를 받지 않고 고통 속에 살았을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차 의원에서는 거의 병에 대해 진단을 하지 못한다고 보면 된다. 우선, 화농성 한선염이 종기가 생기는 것이 반복되는 질병이지만 이와 비슷한 질환이 여러개가 있기 때문에 구분하는게 필요하다.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보면 항외과를 가서 진단을 받거나 그곳으로 가서 배농을 하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항외과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나 가급적이면 이 질환을 항외과가 아니라 피부과에서 봤으면 좋겠다. 그 이유는 우선 피부질환이기 때문에 진료를 피부과에서 보는게 맞으며, 치료또한 항외과에서는 배농만 유도할 뿐이지 진짜 치료같은 치료는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피부과에서 진단을 받아야 건강보험에서 제대로 환자 수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건강보험에서도 늘어나는 환자 수를 보고서 더 신경써주고 산정특례도 완화될 수가 있게 된다. 이 병을 관리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대학병원 피부과를 가서 진단받기를 추천한다. 대학병원 피부과가 불친절한 의사도 꽤나 많은 편이고 3분 진료도 허다하지만 그럼에도 대학병원을 추천하는 이유는 정확한 병의 진단을 위해서는 대학병원 교수급은 되어야 하며, 대학병원에서 진단을 받아야만 추후 산정특례를 수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와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말은 이 병이 단순히 종기가 생겼다 터지고 하는게 아니라 우리의 면역체계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 병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의사들은 수십번 배농을 하거나 수술을 유도하는데 병의 원인이 "면역체계의 이상"이기 때문에 수술을 한다고 해서 병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병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이 병이 "우리의 면역이 이상해서" 생긴 병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좀 더 병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며 치료를 하는데 있어서도 어떤 것이 나에게 진정 도움이 될 것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국내에 정보가 많지는 않으나 구글에 검색하면 제약회사가 올려 놓은 정보나 논문 등을 볼 수 있으므로 그러한 자료를 종합하여 병에 대한 공부를 같이 했으면 좋겠다. 통상적으로 화농성 한선염 또한 "자가면역질환"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가염증질환"이다. 이 병에 대해서 좀 더 쉽게 이해를 하고 싶다면 크론병이나 류마티스 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건선 등에 대해서 아는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들 병이 자가면역질환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이해를 하게 되면 화농성 한선염을 대하는데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생기는 병이기 때문에 어떤 시도를 한다고 해서 이 병이 나아지는 것은 없으며 오히려 그런 행동이 병의 중증을 더 심화시키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나의 치료 과정, 화농성 한선염에 대한 이해, 대학병원을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 피부과 의사를 찾는 방법 등등에 대해서는 차차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다.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시각에 의해서 서술되는 부분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겠지만 나의 경험이 다른 환우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