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농성 한선염이 첫 발병한 시기는 2019년이었고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던 것 같다. 나의 주 증상은 양쪽 겨드랑이였고 빨갛게 염증이 올라오고 농이 터지면서 노란색 고름과 피가 나왔다. 고름때문에 냄새도 좀 났다. 몇 개월을 방치하다가 그 해 10월에 서울아산병원을 가서 "화농성 한선염"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때 내가 받았던 치료는 염증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스테로이드 국소주사를 병변에 맞는 것과 이소티논을 처방받은 것이었다. 화농성 한선염이 여드름 치료제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소티논은 아주 유명한 여드름약이지만 가임기 여성이 먹을 때 임신을 하게 되면 기형아가 생길 위험이 높다. 그래서 병원에서 이 약을 처방받기 전에 이러한 설명을 들었다는 각서를 썼다.
나는 그동안 많은 약을 먹어왔지만 기형아 발생 위험때문에 병원에서 각서까지 받는 약은 처음 봤다. 국경절 연휴에 잠깐 한국으로 귀국한 것이었기 때문에 휴가가 끝난 후 다시 중국으로 들어갔다. 이소티논을 2주 정도밖에 처방을 받지 못했으므로 약을 얼마 먹지 못했는데 효과는 그다지 없었다. 그래서 중국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학교에서 이미 보험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병원을 가면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다. 톈진에서 제일 큰 병원으로 향했는데 사람이 진짜 많았고 병원이 정말 무슨 전쟁통을 보는 줄 알았다.
거기서 병변을 보여준 후 내가 처방받은 약을 의사에게 보여줬다. 의사가 소독약과 약을 하나 줬는데 약이 중국어로 되어있고 한약 냄새가 나서 무슨 약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항생제 종류일 것 같다. 그 약때문인지 아니면 한국에서 맞은 스테로이드 주사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병변이 조금 가라앉았다. 적어도 농이 터져서 피가 나오는건 중단되었다. 이후 12월에 한국으로 완전 귀국했고 아산병원으로 피부과를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나에게 화농성 한선염 진단을 내려준 선생님은 여자였는데 귀국한 후에는 그 선생님이 일을 그만두어서 다른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그 의사는 한선염 치료제로 이소티논이 사용되니 이걸 먹으라 했다. 병원을 갈 때마다 병변을 눈으로 확인하긴 했으나 직접 만져본다거나 그런건 없었고 염증이 조금 가라앉은 상태여서 그런지 스테로이드 국소치료도 없었다. 이소티논은 몸무게에 비례해서 먹는데 나는 아침, 저녁으로 2알씩 해서 하루에 4알을 복용했다.
하지만, 이소티논의 부작용 중 하나가 건조함을 일으키는 것인데 나는 이 약을 먹은 후 건선이 조금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특히 두피건선이 잠깐 호전된 상태였는데 다시 악화되었고 팔꿈치쪽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입술도 자꾸 말라서 바세린을 달고 살았다. 이소티논은 간에서 대사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간수치를 확인해가면서 먹어야 한다. 그래서 병원을 갈 때마다 1시간 30분 정도 일찍 가서 미리 피검사를 받았다. 피검사가 조금 늦게 나오면 진료가 덩달아서 미루어졌기 때문에 병원을 한 번 가면 기본 3시간은 소요되었다.
마지막에는 간수치가 점점 올라가 96정도 찍는 바람에 이소티논 복용을 4알에서 2알로 줄였다. 그 이후에는 병원을 가지 않았다. 내가 그때 병원을 가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소티논을 먹어도 별다른 호전 증상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바르는 항생제인 크레오신티를 함께 받았는데 이걸 아무리 발라도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겨드랑이를 들여다 보면 여전히 흉터가 져있고 군데군데 통증이 느껴졌다. 이소티논을 먹는게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두 번째, 내 상태가 고름이 터질 때도 있었지만 극심한 통증으로 인하여 팔을 들기 어려운 수준까지는 아니었고 이소티논이라는 약도 그만 먹고 싶어서 병원을 가지 않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약 복용을 끊어서 그런지 아산병원 진료를 취소한 후 한 달 정도 있다가 다시 통증이 심해졌다. 나는 아산병원을 다시 예약하려고 했으나 예약이 3개월이나 걸린다해서 포기했다. 삼성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1주일 안으로 예약이 잡혀서 삼성병원으로 옮겼다. 그곳에서도 화농성 한선염 진단을 받았다. 처음에 피검사를 진행했고 항생제를 하나 받았다. 그리고 스테로이드 주사도 맞았다.
삼성병원에서는 화농성 한선염이 완치가 되지 않는 병이라고 말했고 나보고 살을 빼라고 했다. 살이 있으면 한선염이 더 심해지니 우선 살을 빼는게 좋을거라고 말했다. 항생제 복용도 오래하지 않는게 좋다며 처음에 2주치를 처방해줬고 나중에는 상황이 심해지면 먹으라며 2주치 정도만 더 처방을 해줬다. 항생제에 대해서 보수적으로 대했기 때문에 원래 그런가보다 했다. 삼성병원은 내가 가진 질병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항생제 사용도 보수적이었으며, 2021년과 2022년에는 한선염이 그렇게 심하지 않아서 병원을 자주 가지 않았다.
그래서 예약이 되어있는 것을 취소했다. 한선염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자가염증질환) 등은 관해와 급성기를 반복한다. 2021년과 2022년이 그나마 내가 관해기를 겪었던 것 같다. 하지만, 2022년 하반기가 되어서 한선염이 다시 심해지기 시작했다. 우선 겨드랑이에 농이 또 터졌고 이번에는 서헤부 쪽에도 농이 터지면서 피가 났다. 처음에 나는 서혜부쪽에 질염으로 인하여 가려움이 조금 있고 아픈건줄 알았는데 확인을 해보니 한선염과 같은 증상이 서헤부에 있었다.
나는 직감으로 '좆됐다'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내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생리를 규칙적으로 하고 생리 양을 조절하기 위해서 약국에서 경구피임약을 구매해서 먹었다. 그런데 웬걸...!! 너무 오래간만에 경구피임약을 먹었더니 부작용이 폭발했다. 겨드랑이 붓기는 물론이고 배가 미친듯이 아팠으며 생리가 부정출혈이 심하게 나서 거의 한 달 내내 나왔다. 지금까지 겨드랑이에 종기가 조금 나긴 했어도 미친듯이 커지는 것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종기의 크기가 점점 커지더니 내 엄지손가락 길이만큼 부풀었다.
이 상황은 도저히 병원을 가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었다. 우선 한선염이 1차 의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병이라는걸 내가 알았기 때문에 동네 병원을 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산병원과 삼성병원에 다 전화를 돌린 결과 예약이 3개월 정도 밀려 있었고 분당차병원의 경우 1달을 기다려야 했다. 유튜브에서 한선염에 대해서 설명한 영상을 확인한 후 마지막으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순천향대로 전화했다.
다행히 병원에서 당일진료가 된다고 했다. 그때 기억으로는 내가 금요일에 병원을 방문한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집에서 병원이 꽤나 멀리 있기 때문에 야탑역까지 이동을 한 다음 9300번 좌석버스를 타고 순천향대로 향했다. 오후 3시까지 접수를 해야 당일 진료가 가능한데 처음에 병원을 찾는데 길을 헤매서 제 시간에 가지 못할까봐 걱정했다. 다행히 접수를 마쳤고 신관 3층 피부과로 향했다.
담당 교수님은 그 날 진료를 보지 않기 때문에 일반의사로 보게 되었는데 나를 보자 마자 이건 한선염이라고 했고 이 정도 크기면 당장 배농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피부에 칼 대는게 무서워서 안하면 안되냐고 했는데 의사가 이 크기에 배농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처치실로 들어가 배농 작업을 했다. 마취를 한 다음 칼로 도려냈고 드레싱 작업을 끝냈다. 상태 확인 및 드레싱 때문에 의사가 토요일인 내일에도 오라고 했다.
그리고 채혈실로 가서 피검사를 했고 주사실로 가서 항생제 주사와 진통제를 맞았다. 의사가 따로 항생제와 진통제를 처방해주기도 했다. 의사는 나에게 상태가 꽤나 심각하다며 최악의 경우 생물학적제제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생물학적제제가 뭔지 몰랐고 무슨 주사값이 100만원이냐 되냐며 겁이 났었다. 그래도 큰 불은 끈 상태였기 때문에 안심이 되었다.
그 뒤 치료과정은 다음 편에 계속...